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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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상 /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 신성림 옮김 | 예담 펴냄 | 2017)

 
이 책은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1853~1890)가 평생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 여동생, 고갱 등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를 엮은 책입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영혼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고흐의 인간적 고뇌와 성찰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하고 제 단상(斷想)을 덧붙입니다. 

"새들에게 털갈이 계절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깃털을 잃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실패를 거듭하는 불행하고 힘겨운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 털갈이 계절이 있기에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이 변화의 시기에 애착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지. 그리 유쾌한 일도 재미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새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일생에도 “털갈이의 계절”은 찾아옵니다. 털갈이는 고흐의 말처럼 "실패를 거듭하는 불행하고 힘겨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변화의 시기기도 합니다. 예술가가 부동산에 투자해서 큰 부자가 되었다면 그는 사업가이지 예술가는 아닙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을 예술에 걸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더 잘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인생의 변화조차 공개적으로 떠벌리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는 사람입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자신을 성찰하며 영원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신심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

예술가는 영혼에 거대한 불길을 지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불길을 쬐러오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그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쳐다볼 뿐입니다. 심지어 왜 불을 지피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예술가는 고독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재를 걸고 있는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그 불 옆에 와서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일입니다. 고흐가 지핀 영혼의 불길은 그가 죽어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불길 곁에서 얼음장 같은 삶의 추위를 녹이고 있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사진 왼쪽, 2005년 / 오른쪽, 2017년 책 표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사진 왼쪽, 2005년 / 오른쪽, 2017년 책 표지)

"사랑에 빠질 때에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한 여인이 사랑의 성공 여부를 미리 계산해 본 후에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렴. 그녀는 ‘절대 안 된다’보다 더 극단적인 대답을 하지 않을까. 테오야, 그런 건 생각도 하지 말자.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고 말하자."
 
예술가는 사랑을 엔진 삼아서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고흐의 말처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 사랑에는 계산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런던화랑 점원으로 일할 때 하숙을 한 하숙집의 딸을 사랑했지만 실패로 끝납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사촌누나 케이를 사랑했지만 역시 실패합니다. 1882년 헤이그 거리에 버려진 임신 중인 시엔이라는 창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1884년 부모님과 함께 머물던 누에넨에서 마르코트라는 열 살 연상의 시골 여인을 만나지만 양가 부모의 격렬한 반대로 그 사랑도 끝장이 나고 맙니다.

고흐의 사랑에는 계산의 흔적이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입니다. 그는 실패한 사랑의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고통 끝에 피어나는 꽃입니다. 고흐의 나지막한 음성이 기도처럼 들려옵니다.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 적은 것은 판독할 수 없는 단어와 실수, 결함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숲이나 너도밤나무, 여러 인물들이 나에게 들려준 것의 일부가 남아 있다."

좋은 예술가는 풍경을 자신의 사유로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사람입니다. 대상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앞세우며 대상을 귀하게 받드는 사람입니다. 고흐의 말처럼 "그렇게 받아 적은 것은 판독할 수 없는 단어와 실수, 결함을 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 실수와 결함이 풍경을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완벽한 재현을 했다면 그것은 사진이지 그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부분이 어딘가에 어렴풋이 남아있을 때 우리는 그것은 예술이라 부릅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들릴 듯이 들릴 듯이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은 신이 뭘 하는지 잘 모를 때, 제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선량한 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습작을 만들기 위해 그가 많은 수고를 했다는 것 정도이지."

고흐는 온몸으로 예술을 밀고 나간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세상조차 신이 만든 습작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본 세상은 신이 제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서 만든 작품이라서 사랑은 자주 실패하고 사악한 것이 바른 것을 이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신은 한없이 선량하여서 자신의 습작을 만들기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신도 놀고먹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불행과 동행하며 자신의 땀을 꽃으로 바꾸는 존재입니다. 예술가는 마침내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사람,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책 속의 길] 143
김수상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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