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안먹는 것 쯤이야. 불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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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 『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펴냄 | 2018)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 무렵,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라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었다. 미국에서 소고기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비윤리적이고 비위생적인 사육과 유통과정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책이었다. 그 당시 나는 생고기의 맛을 막 알았을 때였고, 책을 계속 읽어내려가다가는 그 맛있는 생고기를 못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책을 덮고 책장 구석에 꽂아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입가에 피를 묻혀가며 생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3년 전에 황윤 감독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스톨에 갇혀 앉았다 일어나기만 하고 뒤를 한번 보지 못하는 암돼지들을 보았다. 배설물이 돼지의 무릎까지 차올라 온몸에 똥칠을 한 돼지들을 보았다. 콜레라에 걸려 산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을 보았다. 그곳은 이미 돼지농장이 아닌 돼지공장이었다. 그날 이후 육식고기를 먹지 못하는 내가 되었다.

  얼마전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을 읽었다. 전작 ‘인간의 조건’에서 꽃게잡이 배 선원이나 양돈장 똥꾼처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현장을 작가가 직접 취업해서 그들의 숙소의 크기는 얼마인지, 얼마정도 버는지, 얼마나 극한환경에서 일하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글로써 남긴 작가는 두 번째 책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닭농장, 돼지농장, 개농장에 직접 취업하여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겪은 가축동물들의 잔혹사를 담아냈다.

  들어가는 말에서 작가는 통계 대신 클로즈업을 했다고 말한다. 통계의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작가는 현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경험의 일부가 되는 클로즈업을 해서 알 수 있다고 했다. 작가가 말한 통계와 클로즈업의 차이는 본문을 조금만 읽다보면 이해가 된다. 작가의 글에서 가축 농장에서 일어나는 상상도 못할 잔인하고 끔찍한 일들이 너무도 생생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만한 크기의 케이지 안에는 닭 4마리가 산다고 한다. 닭은 구기고 찌그려뜨려도 터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감별사들이 감별해낸 수평아리들은 한사람이 자루를 벌리면 다른 사람이 병아리를 붓고 쓰레기 담듯 발로 꾹꾹 눌러 자루 꼭대기까지 채워 넣는다. 그 모습은 늦가을 즈음 청소부들이 자루에 낙엽을 담는 모습과 똑같다고 한다. 자루안의 수평아리들은 흙이랑 계분이랑 섞어서 비료로 만드는데 쓰여지는데, 옮겨지는 트럭 안에서 엔진 소리를 뚫고 "삐약" 소리가 계속 새어 나오는 것을 작가는 못견뎌 했다.
 
 
 

  병아리들의 운명을 가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던져진다. 약추, 수평아리들이 걸러진다. 자동차부품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와 자기들의 운명도 모른채 장난치는 꼬맹이같은 병아리들을 보면 누가 아주 비싼 장난을 치고 있는거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자기가 골라내면 죽음의 길로 간다는걸 알면서 손으로 병아리를 골라내는 작가는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을까.

 값이 추락한 배추밭을 농부들이 트랙터로 갈아엎듯, 가축이 전염병이 발생하면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 당한다. 이런 뉴스 광경은 치솟는 고기값에 대한 우려와 함께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그런 동물들이 약간의 관심이라도 받는 것은 그들이 판매 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이고, 이렇게 매일같이 매몰 처분되는 수평아리들에게는 방송사 카메라가 찾아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연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10월 10일(6일령)
폐사
1동-5마리/2동-25마리/3동-8마리/4동-10마리/
5동-25마리/6동-42마리/7동-17마리/8동-22마리/
9동-19마리/10동-24마리/ 총 197마리

#10월 11일(7일령)
폐사
1동-2마리/2동 26마리/3동-9마리/4동-4마리/
5동-20마리/6동-23마리/7동-20마리/8동-6마리/
9동-8마리/10동-11마리/총 129마리


 작가가 기록한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닭들의 숫자다. 평균보다 작거나 쩔뚝거리거나 기형인 닭들을 사룟값을 축낸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죽인다. 자기들끼리는 “도태시킨다”라는 고급(?)용어를 쓰지만 결국은 죽이는 거였다.

"죽은 건 탈탈 털어서 여기 담고 쩔뚝이는 죽여버려. 어차피 다 냉동실에 넣어야 하니까"
"출하할 때 보면 쫄이 엄청 많아. 저런 놈들이 닭 뺄때까지 살아 있었으면 사료를 엄청 먹었다는 얘기야. 그러면 우리는 그 사룟값 감당못해. 그니까 보는 족족 저런 쬐까난 놈들 다 잡아내버려. 이게 자네 일중에서 제일 중요해."
그들이 닭들을 도태시키면서 하는 말들이다.

  한달 넘게 닭을 죽이는 작업을 한 작가는 죄책감이 들기보다는 무감각해 보였다.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이 나무젓가락 부러뜨릴 만큼의 감정도 소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거 같다고 했다.

  폭 70cm, 높이 1m 20cm, 길이 1m 90cm의 돼지를 거둬놓은 케이지를 스톨이라고 부르는데, 그안에서 모돈이 눕거나 일어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모돈의 건강상태, 사용약품, 임신확인 날짜 등을 확인하기 편하고, 주사 놓기 편하고, 인공수정할 때 편해서 스톨에 가둔단다. 모돈이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을 때는 임신사와 분만사를 오갈때다. 모돈의 회전율이 1년에 2회정도라서 모돈이 걸어다니는 시간을 따지면 일년에 단 40분 정도다.

  돼지들 또한 닭처럼 평균만큼 체중이 늘지 않으면 사룟값을 축낸다 하여 바닥에 패대기 쳐서 죽여 버린다. 일격에 죽지 않고 입과 코로 피를 쏟아내고 발버둥 치다가 분뇨장에 버려지고 추위와 허기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숨이 끊어진다고 한다.

  고밀도의 사육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다른 돼지의 꼬리를 씹는 습성 때문에 이빨과 꼬리를 바짝 자른다. 작가는 돼지의 이빨을 자를 때 들리는 비명소리가 고통의 표현이라 생각하면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명이 비명 아닌 것이 되어야 했단다.

  비명소리가 제일 커질때가 있는데 이빨을 자를 때도 꼬리를 자를 때도 아닌 거세를 할 때다. 거세는 ‘웅취’라고 부르는 수컷 특유의 비린내를 줄이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인데, 고기의 맛을 위해서 그 고통을 준단다.

  책은 불편했다. 마트에 가면 랩으로 잘 포장된 돼지고기가 진열되어 있다. 그 자리에 있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잔인하고 사람을 분노하게 했다. 잘 포장된 진열대의 돼지고기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 알아버렸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일들이었고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었는데 또 읽어버려서 마음이 불편해졌고 공장식 사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더 견고해졌다.

  살아있는 오리의 털을 뽑는다고 하여, 그 과정에 오리들이 기절하고 죽는다고 하여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오리털잠바를 입지 않는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갑질을 자행하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들의 물건은 사지 않는다. 과소비가 환경오염을 초래한다고 생각해서 미니멀리스트를 꿈꾼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피곤하게 산다고 말한다. '너하나 고기 안먹는다고 달라지는건 없다'라고 말한다. '너 그러다 시집못간다'고 어쭙잖은 조언들을 한다.

  나도 맛있는 생고기를 못먹게 될까봐 아니면 먹으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생길까봐 ‘육식의 종말’ 책을 급히 덮고 모른척하며 살았던 날이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읽고 나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책읽기를 그만두려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불편해지는 진실들을 알게 되면 몸이 고될까봐 마음이 아플까봐 덮어 두고 외면하기 보다는 진실을 직면하고, 감당 할 수 있을만큼의 저항과 실천을 하며 살려고 한다. '고기로 태어나서' 같은 불편하지만 진실을 담은 책들을 더욱더 많이 읽으려 한다. 앎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한다.
 
 
 
 
 
 
 
 
 
[책 속의 길] 144
백소현 / '지구사랑환경모임 에코휴먼'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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