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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결성지 달성공원, 안내판 없이 103년째 외면

기사승인 2018.08.27  0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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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 처단 주도한 '무장독립단체' 1915년 8월 25일 달성공원서 창립...표식 없이 텅 빈 역사 현장
기념관 조성한 타 시·도와 대조 / 후손·시민단체 첫 창립기념식 "독립운동 기억 위해 추념사업 추진"


대한광복회 결성지인 대구 달성공원이 독립운동유적지라는 안내판 하나 없이 103년째 외면받고 있다.

25일 오전 대구시 중구 달성동 294-1 달성공원. 무장항일투쟁으로 일제를 위축시킨 청년 지사들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날 공원을 찾은 시민들도 달성공원이 독립운동단체 출범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잘 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돌아왔다. 달성공원 안에 있는 동물원을 보기 위해 공원을 찾았을 뿐 이곳이 독립운동단체의 결성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 무장독립단체 '대한광복회' 창립 103주년 기념식(2018.8.25.달성공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3주년 대한광복회 창립일을 맞아 공원을 찾은 대한광복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작은 표식도 없이 텅 빈 역사 현장을 둘러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대현(74.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 지사 아들) 선생은 "이곳에서 결성된 사실을 아는 이들이 없어 슬프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독립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비석하나라도 세우고 늦었지만 추념사업을 추진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는 25일 달성공원 서침나무 아래에서 대한광복회 창립 103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 지사 아들 우대현 선생과 단원 김재열 지사 아들 김길조(77) 선생을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대한광복회 기념식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창립 당시 맹세문과 포고문을 낭독하고 독립군가를 합창한 뒤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국권을 강탈한 것을 공포한 경술국치 108년 나흘 전이다.

 
 
▲ 대한광복회 독립지사 후손인 우대현 선생과 김길조 선생에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 책을 봉정하는 김상태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고문(2018.8.25.달성공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기념식에서 이들은 "대한광복회는 민족의기를 북돋아 3.1운동을 가능케 했고 의열단과 함께 국외무장 투쟁 토대를 구축했지만, 달성공원에서 창립됐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거의 없다"며 "역사의 현장은 안내판 하나 없이 103년째 방치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충청도 지부장 김한종 선생, 경상도 지부장 채기중 선생, 총사령 박상진 선생을 기리는 기념과, 기념공원, 동상, 기념비, 생가 복원 등이 선생들 고향인 예산, 영주, 울산에 조성돼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라도 대구의 독립지사들과 독립운동 유적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추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이들 단체는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 책을 올해 펴내고 잊혀진 대구지역의 독립운동유적지들에 대한 제대로된 관리와 추념사업 추진을 요구해오고 있다. 오는 29일 108년 경술국치 당일에는 오전 11시  대구 수성구 명덕로 광덕빌딩에서 경술국치일 추념행사를 진행한다.

 
 
▲ '국내 독립운동 국가수호 사적지'에 등록된 달성공원 / 사진.국가보훈처 산하 독립기념관

103년 전 일제강점기 당시인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 안 일본 신사터 뒤. 대구와 경상도에서 온 조선 청년 2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일제 눈을 피하기 위해 지역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청년들은 대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와 경북 영주 풍기 '광복단' 소속으로 이날 두 단체를 발전 통합시켰다. 1910년대 국내 무장항일투쟁을 선도한 무장독립단체 '대한광복회'가 탄생했다. 

그들의 주요 타게트(표적)는 친일부호였다. 대한광복회는 전국 도 단위는 물론 만주까지 지부를 조직해 일본군 주둔지를 습격했다. 현금 수송 마차를 탈취하고 위조지폐를 발행했으며 일본인 금광을 공격하는 등 친일파 처단을 주도했다. 1910년 경술국치 아픔 속에 나라를 뺐긴 청년들은 일제의 옥죄어오는 탄압 속에 온건한 독립운동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자 아예 무장투쟁 노선을 기치로 내걸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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