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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합리적 개인주의자일까

기사승인 2018.09.03  09: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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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홍 /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15)


최근 친구 차를 타고 경남 울산시에 놀러갔다. 예상보다 늦은 도착이었다. 목적지 근처에서 빙빙 돌았다. 주차장 입구를 찾는 데만 시간이 걸렸다. 슬슬 짜증이 났다. 화장실 볼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3층짜리 카페가 보였다. "카페에 잠깐 차 세우자. 화장실만 갔다오게." 친구는 "그럼 커피 마셔야 되는 거 아냐? 좀 그런데"라고 말했다. 동시에 카페를 지나쳤다. "잠깐만 기다려봐. 공용화장실이 근처에 분명히 있을 거야. 찾아줄게." 단호했다.

그리고 황당했다. "관광지 카페에 화장실만 갔다오는 사람 많아. 문제 없어." 정말 문제랄 것도 없었다. 3층 건물 카페에 화장실만 이용한다는 게 눈치 보일 상황도 아니었고, 매장의 투명한 창문 틈으로 보니 손님들도 적당히 있었고, 친구 차를 잠깐 카페 주차장 한 가운데 세워둔다 해도 막히지 않을 공간이 있었다. 대학생 시절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화장실만 이용하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해준, 그런 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문제가 있다면 음료를 하나 사 먹으면 되지 않나. 하반신 전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내가 이 차에서 싸버려도 좋다는 건가. 하지만 철저한 나의 손해다.

   

1분이 30분 같았다. 정확히 2분 뒤, 친구는 주차장 입구를 제대로 찾았고 공용화장실도 찾았다. 공용화장실 가까이 차를 세워준 친구에게 깊고 깊은 배려심을 느꼈다. "내가 찾았어. 잘 찾았지? 맘 편히 갔다와." 친구는 흥겨워했다. 그를 한 번 흘겨봤다. '너만 편한 거 아니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래. 쌀 뻔 했다." 나만 고생한 느낌이었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17쪽)

주변에선 이 친구를 개인주의자라고 한다. 남한테 폐 끼치기 싫어하고 자신의 원리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물론 지극히 상식적이다. 커피를 사 먹지 않으면서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화장실만 이용한다는 건 친구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을거다.

하긴 공용화장실은 우리를 위해 우리 돈으로 만들어진 곳 아닌가. 화장실을 만든 지자체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규모로, 편의로 늘상 언론에 저격받는 편의시설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 수 백명이고 수 천명이 된다면 자영업자는 물세 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공용화장실은 무용지물이 되겠지. 제대로 된(?) 화장실을 찾아준 친구의 사례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하여튼 친구는 늘 사태 파악이 빠르다. 남에게 큰 손해를 주거나 남으로부터 손해를 입지 않는 편이다. 마이너스가 생긴다면 플러스로 채워 넣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친구가 떠올랐다. 이 친구는 합리적 개인주의자일까. 이런 친구들이 많다면 우리 사회는 알찬 합리적인 사회가 될까.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건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라고.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 특정 집단이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25쪽)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친구가 괘씸해졌다. 난 정말 화장실이 급했으니까. 다시 가정을 둔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어떠한 가정에도 답은 같다. 어쨌든 운전대는 친구가 잡고 있지 않았는가. 주체는 그 친구였다.

   
 






[책 속의 길] 147
김지홍 / 대구신문 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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