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성차별,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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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2017)

 
성장기에 무시무시한 성차별 세례를 폭포수처럼 얻어맞으며 페미니즘에 눈 떴다. 그러나 내 안에 싸워야 할 성차별주의가 너무 많은데다 밖으로 비난과 공격의 화살을 맞받을 강심장이 못되었으므로, 나는 그저 '페미니스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고 나도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한다. 이 책은 미국의 대중문화와 각종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서(물론 록산 게이의 심각한 경험담도 있지만) 매우 산만하고 공감하기 힘들었기에 읽다가 덮어버렸다. 하지만,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라는 부제만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bad'는 '나쁜'이라는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 못한'이라는 뜻으로, '부족한 페미니스트'라 읽어야한다는 록산 게이의 명명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맞아, 그것을 완벽하게 체현해야만 무슨 주의자가 되진 않잖아. '지향점'일 수도 있는 거야. 그 다음부터는 나이가 주는 용기까지 조금 보태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요.”하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매우 소심한 고백이란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다시 망설인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묻는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자신이 없다.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앞서 우리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벨 훅스의 명제가 폐부를 찌른다.

어처구니없는 내 안의 성차별주의를 예로 들라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지만 여기서 대표적인 몇 가지만 찍어 고백하면,
- 병원에 갔을 때 남녀 치료사 중 누구로부터 치료받을 건가? 나는 남성치료사를 선택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세기 때문? 능력이 더 있기 때문? 무슨 근거임?
- 아이 자전거를 고치려고 낑낑대는 여성에게 느닷없이 내 입에서 "남편 없어요?"란 말이 튀어 나갔을 때, 순간 엄청 당황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자전거 고치는 거랑 남편이랑 무슨 상관이야?!
- 몸에 대한 편견. 뚱뚱하면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사람, 나아가 게으르고 무능력할 거라 치부함. 애써 생각한다, 어떤 부작용이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나 역시 나이 들수록 늘어지는 뱃살을 매일 쳐다보며 거울을 부정하곤 한다. 그거 나 아니야, 나는 곧 살 뺄 거야, 뺄 수 있어, 정말이야! 이 지긋지긋한 몸에 대한 편견 DNA!

책은 총19장에 걸쳐 페미니즘의 매우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과 정치, 의식화, 계급투쟁, 인종과 젠더 등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 들기보다는 관련 논쟁과 흐름을 축약하여 짚어나가는 식으로, 각론으로 짜맞춘 총론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벨 훅스는 ‘남녀평등’이라는 개량주의와, 페미니즘을 단지 계층상승 수단으로만 삼는 기회주의를 배격하고, 학계에 안주해버린 여성운동의 심장에 다시 불을 붙이자고 호소한다.

나 또한 '나쁜 페미니스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페미니즘은 남녀 성대결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가?
- 여성혐오에 남성혐오로 맞서는 어리석음을 말릴 방도는 없는가?
- 풍자와 혐오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 여성 정치인이라 해서 페미니즘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한때 박근혜 씨를 지지했던 그 분들 요즘 뭐하시는지 궁금하다)
- 낙태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에게 유익한가?
- 난민을 반대하면서 성차별을 반대할 수 있는가?
- '자매애'의 배타성은 용서되는가?

성숙한 페미니스트들만이 급진적인 페미니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나와 우리 모두를 성숙한 페미니스트로 성장시키는 것이 급선무라 여겨진다. 하여, 나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묻겠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책 속의 길] 148
이은정 / 두 아이의 엄마.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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