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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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 『나이듦 수업』
(고미숙, 정희진, 김태형, 장회익, 남경아, 유경 지음 | 서해문집 펴냄 | 2016)

 
이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6명의 멘토들이 전하는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72년생. 올 해 47세의 중년 여성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몇 가지 일들과 관련된 책 보다 이 책을 서평으로 쓰는 이유는  몇 해 전부터 20대에 던졌던 화두가 다시 나에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89년 전교조 싸움을 거치고, 90년 전교조 싸움의 여파로 친구가 자살한 사건을 겪으면서 내 삶은 바뀌었다. 파란만장한 10대 후반을 거쳤고, 20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혁명가로 살았다. (너무 거창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시기에 사회의 무게를 감당하려 했다고 회고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나뿐만 아니다. 80년대 중, 후반을 거쳐 온 많은 선배, 후배들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나에게는 세상의 변화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변화의 여정에 맞게 나를 갈고 닦으며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때는 목표가 선명했고, 길도 보였다. 그래서 조금은 맹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헌신과 때론 희생의 아이콘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20여 년을 살아온 듯하다.

다시 돌아온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

마흔이 지나면서 20대에 던졌던 이 물음에 다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더 정확한 물음은 ‘어떻게 잘 늙어 갈 것인가’ 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한 것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누구는 나이 드는 것, 늙어 가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두려움이다. 노안으로 확인되는 중년이라는 징표는 더욱 더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독고 중년이라는 말은 뉴스에 나오는 기사와 내가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모아둔 재산도 없고, 안정된 사회 보장도 없다고 생각하니 더 우울해 지기고 한다. 거기에다 이상도 현실도 선명한 것이 없다. 내 스스로는 답을 찾을 수 없으니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 주변에 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민도 비슷해지고 있었다. 그즈음 만난 책이 ‘나이듦 수업’이다.
 
 
 
책 제목을 본 누군가는 나이 드는 데도 수업이 필요하냐고 했다. 책에서는 100세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자기 나이에 0.7를 곱하면 100세 시대에 맞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된다고 한다.
 
내 나이 47세 x 0.7 = 32.9세. 지금보다 젊어져서 좋긴 한데 뭔가 준비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 갈 날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잘 들기 위해서 우리는 수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나의 물음에 완벽한 답을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존엄한 인생2막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은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년이 되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지금 바로 내가 고민해야 할 숙제로 다가왔다.

이 책은 노인은 누구인가라는 것에 대해 답하며, 나와 소통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 자기교육으로서의 배움과 세대 간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를 얘기하는 지금 앞으로 맞게 될 노년의 ‘관계 2막’을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다. 나와 같이 삶의 전환, 인생 2막을 모색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리고 지역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소통이 활발했으면 한다. 각자의 의제에 집중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돌아서서 인생, 삶이라는 물음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 장년들과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한다.

책의 머리말에는 이 책의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잘 요약해 두었다. 머리말을 읽으면 전체 책 내용이 요약된다. 아래는 책을 보면서 주요하게 전하고 싶은 내용의 일부를 정리했다.

심리학자 김태형 선생은 노인세대를 이렇게 규정한다.
"지금의 노인 세대는 나쁜 분들이 아니라 아픈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젊은 세대, 청년 세대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도 도와주려 하는 건강한 어른의 모습을 갖기 힘든 상황에 있는 겁니다."

노인들을 ‘아픈 세대’라고 규정하며 한국의 노인 세대가 더 이상 꼰대라는 얘기를 듣지 않고 행복해지려면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돈과 행복에 대한 자기 평가의 기준을 바꾸며 자기 긍정을 해야 한다", "행복해 지기 위해 저항하라", "반드시 더불어 살 것”을 얘기한다.

비단 노인 세대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닌 듯 하지만 노인이 되면 자기가 살아온 삶의 긍정성을 잃고, 어떠한 현실과도 타협하며, 혼자 외롭고 고집스럽게 늙어가는 일반적인 지금의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김태형 선생은 80살 먹은 사람이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기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사회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래와 같이 답을 한다.

"본인이 삶에 충실하면 사회는 저절로 좋아지게 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했는데 죄수의 딜레마 실험이나 공항 실험 등이 있어요. 이 연구들은 모든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합리적으로 활동하면 공동체가 붕괴된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인을 위한 합리적인 삶이 시스템과 충돌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결국 자기 삶에 충실해서 자기만 열심히 살면 세상이 좋아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만 그 삶이 유지된다는 것이 여러 심리학적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바입니다."

노인들도 개인을 위한 합리적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공동체 시스템과 충돌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그의 변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고전인문학자 고미숙 선생은 이렇게 얘기한다.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직업을 다시 얻어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아니고, 혈연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장이 열려야 합니다. 이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 노인과 청년이 계속 소통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에게 지혜로운 할머니와 현명한 할아버지가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축복입니까? ....... 청춘에 대한 허황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주로 성적 쾌락으로 구성된 소비문화와 몸의 탐진치(욕심, 노여움, 어리석음)로부터 행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새로운 노년 문화가 꽃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해 전 우리(내) 주변에는 왜 ‘어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큰 일이 있을 때 의논할 수 있는 존재, 뭔가 고민이 있으면 허심하게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유는 모두 각자의 철학으로 자기주장을 앞세우며 다른 이들의 얘기에는 담을 쌓고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중년이 벌써 노년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물리학자 장회익 선생은 노년이 되면 더 좋아지고, 더 빛나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하며 그 지혜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떤 세계에 있는 어떤 존재이며 그래서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 답을 제대로 찾는다는 그것이 바로 지혜가 되죠.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살려면 한 번은 이 질문을 던지고 자기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젊음을 다 보내고 일생을 미치는 사람이 너무나 많죠. 그래서 이 답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해야 돼요."

선생은 노년까지 공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힘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내 안의 스승을 모시고, 몸도 마음도 공부를 즐기는 체질을 갖추며, 모든 사물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덧붙여 “가끔은 지적 도약을 시도할 때 지속 가능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혜로운 노인이야 말로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 공동체 전체의 비전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젊은 사람한테 지혜로운 사람, 따뜻하고 인자한 어른으로 존경받고, 힘들면 언제나 찾아가서 의논할 수 있는 어른으로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소통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자기 교육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공동체 내에서 세대 간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이다.

결국 나이 든다는 것은 관계 맺기를 잘 하기 위한 끊임없는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 아닐까.
 
 
 
 
 
 
 
 
 
[책 속의 길] 149
한민정 / 새로운 사회를 위해 배우고, 상상하고, 실험하는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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