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나서면 한 집에, 참담"...대구 가정 성폭력 재판 참관기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8.11.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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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피해자 대다수 미성년자·가해자와 격리 안되고 조사 과정서 2차 피해도.."보호방안 마련"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집에 사는 경우. 재판이 끝나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디로 향할까?

가해자가 구속이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법정을 나서면 한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해바라기센터나 다른 보호소에서 잠자리를 마련해줘도 엄마나 아빠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대구지방법원에서 지난 달 중순 열린 한 강제추행 재판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엄마의 남자친구, 한 집에 살고 있는 사실상 양아버지가 가해자인 사례다. A씨는 동거중인 여성 B씨의 딸 C양(10살)을 수 차례 강제추행해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개 재판에는 피해자 C양 대신 가해자와 C양 어머니만 참석했다. C양 진술은 녹화테이프로 대신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진행된 진술 녹화본이 재판장에 틀어졌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대구 성평등지킴이단 모니터링 요원1은 "너무 어린 아이여서 보는 동안 조마조마했다. 아이가 진술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또 "질문을 유도하는데 다그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진술 유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 성폭력 재판 모니터링 회의(2018.11.5.대구여성회 사무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성폭력 재판 모니터링 회의(2018.11.5.대구여성회 사무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친족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재판 중 격리가 되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실제 가해자 A씨와 피해자 어머니 B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당시 동거 상태였다는 것이 재판 중 밝혀졌다. 모니터링 요원2는 "전혀 격리가 안돼 황당했다"며 "재판 중 가해자는 '법정을 나서면 어차피 한 집에 간다. 내 돈으로 이 것도 사주고 저 것도 사준다'는 말을 하더라. 황당을 넘어 참담했다"고 했다.

모니터링 요원3도 "한 집에 사는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 가장인 케이스가 많아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자들이 생계 어려움을 겪는 일도 벌어진다"며 "수감을 못시키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모니터링 요원 4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미성년자였는데 아동들의 경우 분리를 시켜도 집에 가고 싶어하더라"면서 "참 슬픈 현실이었다"고 덧붙였다.

5일 '대구경북 시민과 함께하는 성평등인권지킴이단'은 대구여성회 사무실에서 대구 하반기 성폭력 재판 모니터링 두 번째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5개조로 구성된 지킴이단에는 시민 20여명이 활동 중이다.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일환으로 지역 성범죄 재판을 직접 방청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의 부적절한 발언, 행태, 선고 내용을 모니터링→평가해 법원 내 성평등을 이루자는 취지다.

이날 모니터링 요원들은 가정 성폭력 재판 참관기에 이어 성폭력 재판 중 판사들과 가해자 변호사들의 부적절한 발언도 꼬집었다. 지난 달 초 대구지법에서 열린 한 성폭력 재판에서 지역에 있는 한 대학교 교수 D씨가 학생 여러명을 강제추행해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가해자 변호사가 "친근감의 표시였다. 피해자가 유독 유난스럽게 반응한 것이다"라며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9월 재판에서는 자신이 소지한 휴대폰으로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피고인에 대해 판사가 "철없는 행동을 했다"며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구경북시민 '성평등인권지킴이단'의 성폭력 재판 모니터링 활동은 올해 연말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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