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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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알마 펴냄 | 2014)


살다보면 가끔 나보다 더 강하고, 분명하고, 독하고, 거침없는 사람 뒤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좀 조용히 살고 싶어. 싸우기도 싫고, 내가 알고 있는 게 만에 하나 진실이 아닐지 겁도 나. 그러니까 니가 좀 대신 싸워주면 안돼?” 비겁해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말하고 뒤로 숨고 싶을 때 말이다. 그럴 때 숨고 싶어지는 사람도, 또 책도 있다.  가끔 그런 사람에게 끌리고, 그런 책에 끌린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황망했다. 생전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 끝날 듯 울면서 각자의 신에게 빌었다. 그를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생전 그에겐 종교가 없었기에 남은 이들은 어떤 신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본인 역시 특별히 믿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그의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여러 신을 찾으며 빌었다. 그때만큼은 우리가 약하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높은 자에게 그의 안식을 부탁하고 싶었다. 너무 슬퍼서 그 방법 밖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와 회의가 찾아왔다. 정말 신이라는 게 있는 것인가.
신이라는 게 있다면, 왜 그 사람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나. 생전 그토록 착하게 살고,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도 묵묵하게 이고 지고 살던 사람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도록 한단 말인가. 물론, 독실한 종교인들은 ‘너무 이른 죽음’에 대해 이렇게 합리화한다. “신이 그를 너무 사랑해서 일찍 데려갔다.”
 
그런데 말이다, 왜 신은 그토록 사랑한 인간을 그 열악하고 너저분해 보이는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누더기 같은 이불 하나 덮은 채, 가족과 지인에게 마지막 말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도록 내버려 둔단 말인가.  인간이 죽을 때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 그러니까 '안락한 환경'같은 그런 것들을 그는 마지막 순간 하나도 가져보지 못하고 떠났다. 애통했다.
 
죽음의 시점에 대해서는 신이 그를 너무 사랑했다는 그런 말로 어떻게 합리화가 되겠지만, 최소한의 존엄도 찾지 못한 채 유독 더 초라했던 죽음의 과정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 애달픈 죽음을 겪은 그의 지인들에게 평생 남은 한과 상처는 또 어쩌란 말인가. 신이 정말 있다면, 장난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만약 신이라는 게 진짜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리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이 정말 신이 맞느냐고.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빼앗아갈 권리는 없지 않느냐고.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이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 다를 수 있고, 정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읽고 읽고 또 읽고, 더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이런 책 한권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게 한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은 이미 앞서 다른 분이 추천했길래 다른 책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다른 세권의 책을 놓고 고민을 했다. 한권은 어느 시인이 쓴 에세이, 또 한권은 중년의 나이에 자아를 찾아나선 한 미국여성의 체험기, 또 한권이 이 책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책장에 유난히도 고고하게 꽂혀있는 이 독특한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무신론자로 유명했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살아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암 선고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히친스가 세상을 마주하며 남긴 기록이다. 생전 격렬한 논쟁을 즐겼던 그였기에, 어쩌면 이 책은 ‘싸움닭의 마지막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은 문장이 그렇게 아름답지도, 소개할만한 명문장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 어떤 뛰어난 번역가가 작업을 한다고 해도 원작의 디테일함을 다 살리진 못할 것이고, 이는 번역서의 한계일 것이다. 또 히친스 본인도 적잖은 논쟁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이다. 즉, 나는 이 작가의 모든 점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 역시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엔 왠지 모를 강렬함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1년 반 전 식도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회고록의 독자들에게 내 소멸의 순간이 왔을 때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미에서 죽음을 ‘하기’위해 완전히 의식이 깨어있기를 바란다고 다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금도 나는 호기심과 반항심이라는 작은 불꽃을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마지막까지 현을 타면서,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경험해야 하는 일들을 모두 경험하고 싶다.”

병마와 싸우면서 그가 쓴 문장 중 하나다. 그는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신이라는 모순투성이(히친스의 시각에선) 절대자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한 인간으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경전과 종교의 가르침에는 수백년 동안 이렇게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심보를 주류 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재미있는 사실은, 조금은 금욕적인 태도로(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 죽을 준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생존이라는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확실히 기괴한 ‘삶’의 방식이다.”
 
“내가 늦은 나이에 유대교나 이슬람을 신봉하겠다고 결심한다면, 개신교와 가톨릭 양측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잃게 될 것이다. 나는 볼테르에게 새삼 공감한다.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악마를 부인하라는 끈질긴 종용을 받고는 지금은 적을 만들 때가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평소 생각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구절들이다.
그는 종교의 순기능보다는, 종교가 갖고 있는 모순들에 집중했던 사람이다.
독실한 종교인들은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은 이해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신보다 보이는 인간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또 신이든 종교든 무조건 인정하기보다 크고 작은 모순을 파고 드는 것은 아마도 그의 기자적 기질 때문인 듯 하다.
 
“‘기억하라. 너 역시 유한한 생명임을’ 정점에서 상황이 안정되기 시작한 순간에 나를 강타한 그것. 내 자산은 펜과 목소리. 따라서 병이 걸린 곳이 식도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먹고 있는 약의 독성이 상당히 대단한 모양이다. 잠을 자는 데에도 고마운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수면제를 먹고 행복하게 꾸벅거리는 것이 왠지 삶을 낭비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의식을 잃고 지낼 시간이 많을 텐데.”
 
“나는 암과 싸우고 있지 않다. 암이 나와 싸우고 있다.”

이 문장들이 실린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이런 주석이 달려 있다. ‘이 단편적인 메모들은 저자의 사망 당시 미완성 상태였다’ 저자가 글을 쓸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맹목적 믿음이라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몇해 전 출입처 기관장 중 한명이 종교색을 띈 특정단체와 관련 이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부하직원들에게 사실상 반강요를 한 일이 있는데, 맹목적 믿음의 부작용을 그때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그러나 또 나는 적극적인 무신론자는 아니다. 종교 자체를 아예 부정할 생각도 없다.
종교인들을 존중하고, 종교의 순기능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 할머니 역시 A라는 종교의 독실한 신자이고, 그 삶에 종교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늘 생각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믿는 신의 가르침에 따라 무척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사셨다. 그래서 A종교에 대해 좋은 느낌이 많이 남아 있고, 언젠가 내가 종교를 가지게 되면 A종교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히친스의 저 마지막 책 뒤에 숨어 지내고 싶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나 역시 그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호기심과 반항심이라는 작은 불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책 속의 길] 154
노진실 / 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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