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심껏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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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펴냄 | 2010)

 
우울한 내게 친구가 권했다. ‘연을 쫓는 아이’ 읽어볼래? 뭐라도 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내 책상에 놓여진 책. 작가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이라 한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뭘까? 

“1975년 겨울. 지금의 내가 되게 한 그 겨울..”
처음부터 자전적 소설임을 짐작케 한다.

1975년 주인공 아미르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25년이 지난 후에까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그 일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일로 아이는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린 아미르에게 소중한 두 사람 바바와 하산.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세우는 등 영웅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아들인 아미르에게 살갑지 않은 아버지 바바와 같은 젖을 먹고 친구처럼 한집에서 자란 하인의 아들 하산이다. 
 
 
 
책에 파묻혀 지내는 아들이 남자답지 못하다며 못 마땅히 여기는 아버지로 인해 자기연민에 빠지는 마음여린 주인공.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를 외치며 주인공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 하산은 언제나 위기에 몰린 주인공을 구해주었지만, 주인공은 하산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을 목격하고서 너무나 두려워 달아나게 된다. ‘그놈은 하자라인일 뿐이야’ 라는 변명을 하면서.
그날 이후 주인공은 하산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비겁함에 몸서리치며 25년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는데...
 
어린 시절을 함께 놀며 보낸 동무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종, 사회, 종교라는 선을 그어 나와 너라는 벽을 쌓고 혐오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이런 것이 인간의 속성일까? 사람의 심리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담담하지만 예리한 묘사가 인종, 사회, 종교를 뛰어 넘어 전세계 사람들의 양심에 작은 돌을 던진 것은 아닐까?

연싸움대회에서 연을 쫓는 아이들은 모두 평등하다. 모든 아이들에게 시합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실력대로 겨루고 우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준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엄격한 잣대만을 들이대었을 경우에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해 질 수 있는지 탈레반 통치하의 아프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는 듯하다.

작가는 러시아에 점령당한 아프간에서 망명해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전직 장군, 장관, 교수, 기업인 등 소위 지배층들의 이주민으로서의 고달픈 생활도 그려내고 있다. 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던 지위에 있던 사람도 다른 사회에서는 지배와 억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권력의 상대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책을 덮자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민들이 연상된다. 오래전에 만난 그들...
누나하며 따르고 챙겨주었던 영리한 친구 아속, 문제가 생기면 미스박!부르며 달려오던 다혈질의 스리랑카인, 통역이 필요할 때마다 불러도 성심껏 도와주던 인도네시아인,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필리핀인, 조용한 철학자 파키스탄인, 옆집 아저씨같은 방글라데시인 E, 결혼하자고 들이대던 네팔인,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속내를 털어놓던 결혼이주여성들, 기숙사로 불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던 이주노동자들.
 
함께 했던 이주노동자들... / 사진. 박정민
함께 했던 이주노동자들... / 사진. 박정민

다짜고짜 반말하는 한국인들에게 화가 난다는 그들, 경력이 많아도 갓 입사한 20살 한국인을 상사로 모셔야 한다며 힘들어 하던 그들, 언제 손가락·팔이 잘릴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하는 그들, 한국에 들어올 때 진 빚과 가족들 생활비를 버느라 밤낮으로 일해야 했던 그들, 단속의 두려움 때문에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늘 숨죽어 살아야 했던 그들, 너희 나라에는 지하철이 있냐며 무시하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며 무한한 동정심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해 체념하며 살던 그들.

나는 왜 그들 대신 떼인 임금을 받아주고, 말썽피운 회사에 찾아가서 대신 사과하고, 병원의 보호자 노릇하고,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 저들은 왜 걸핏하면 나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난리인가.
 
함께 하겠다던, 친구가 되겠다던 내가 그 약속을 저버리고 2년만에 그들에게서 돌아섰다. 
그들의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며 어차피 나와 다르다며...
‘그놈은 하자라인일 뿐이야’라며 하산을 배반한 아미르와 무엇이 다를까.

변호사가 된 지금도 이주민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건 어쩌면 그 시절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했던 나의 비겁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양심껏 살고 있는가?
‘당신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를 외칠 수 있을 만큼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어려운 한국인들도 많은데 왜 하필 외국인들을 돕느냐는 질문에 10년 전 선배가 한 대답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계급사회에서 소외된 한국인보다 더 하층계급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지켜지고 개선된다면, 한국인의 인권도 함께 향상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돕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은 10년 전보다 개선되었을까. 깊은 한숨과 함께 더 우울해 진다.

 
 
 
 
 
 
 
 
 
[책 속의 길] 155
박정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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