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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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새해 - 유영철 칼럼]


 당신은 그런 말을 하며 자랐습니까? 그런 말을 듣고 자랐습니까? 그런 말을 하며 즐거워  했습니까? 그런 말을 듣지 않고 자란 게 다행이었나요? 그런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면 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그 심정을 헤아려 보았나요? 먼 훗날 잘못이 밝혀졌을 때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나요?

 한 오십년 전 우리는 우리의 일반사회 선생님을 신고했었다. 삼선개헌 이후 더 잘 살고 있는 시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학습에도 혼란을 주는 체제 비판적인 발언을 하셨고 이 대목을 귀에 담은 일부 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당국은 일반사회 선생님의 발언이 그것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빙그레 웃으셨고 그후 경북대학교로 옮겨 국민윤리 교수로 재직하셨다. 당시 우리는 신고정신이 투철했었다. 간첩도 많았을 것이다. 정권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검거에도 힘을 쏟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은 ‘아닌 밤중에’ 벼락보다 더한 사건을 허위조작하여 체제유지에 이용하였고 정권에 의해 조작당한 이들은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되었다. 1969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경제학자 권재혁의 딸 귄재희는 “빨갱이의 자식은 빨갱이”라고 비참함을 토했다(케이비에스 대구 '기억, 마주서다' 제9부). 권재혁은 2014년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그 사건이 허위조작이었음이 드러났고 권재희 또한 빨갱이의 자식이 아님도 드러났다. 그런데 빨갱이의 자식으로 자라온 그 세월은 어떤 선고를 받을 것인가.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 1961년 5.16이후 간첩으로 몰려 투옥된 김규철의 부인 이영자도 “간첩의 마누라도 간첩”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기억, 마주서다' 제8부). 교사(초등)인 그는 남편이 수업중 연행되고 투옥된 이후 "간첩마누라가 우리 학교에 있다."며 학생들이 구경하러 반으로 몰려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내 학교를 그만두었다. 교원노조 자체가 ‘반국가행위’였다. 1975년 4월 9일, 전날 사형선고 이후 만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재건위사건의 희생자들도 빨갱이의 마누라, 자식이 되어 그런 말을 들어가며 숨죽여 살았다('기억, 마주서다' 제10부). 2007년 무죄판결을 받기 전 삼십여년은 정권이 이름지어준 인혁당재건위의 유족에게는 어떤 세월이었을까.
       
KBS대구, <기억, 마주서다> - 제9부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2018.11.6일) 방송 갈무리
KBS대구, <기억, 마주서다> - 제9부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2018.11.6일) 방송 갈무리

 '기억, 마주서다'. 케이비에스 대구방송총국은 지난해 9월 4일부터 11월 20일까지 대구 경북지역 중심으로 발생한 주요 사건을 10부로 나눠 방영했다. 기획 안중석, 피디 최수영의 ‘기억, 마주서다’에는 국가가 외면한 역사, 국가가 저지른 역사, 대구를 대구답게 하는 역사, 대구를 말살하려는 역사를 지역을 중심으로 하면서 타지역으로 넓혀가며 조명한, 그동안 다루기 힘든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외에도 다루기 힘든 주제는 많겠지만 10편의 엄선된 주제에 대해 사실과 증언을 바탕으로 감정이입을 절제하며 객관성을 갖고 편당 30분안에 함축했다. 기획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역사를 하나의 취미로 교양으로 또는 선택으로 간주하는 데에 조금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 무감각한 지식층들이 많다. 의외로 교수들 중에도 많다. 그런 지식층들이 너무나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역사를 기록한다는 기자들은 역사에 대해 남달리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자는 진실을 추구해야 하며 성향이 같더라도 같은 성향의 정권이 허위조작 하였다면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편부당한 진실추구형이 아닌 왜곡된 현실추구형의 기자들이 적지 않다. 광고주의 성격으로 단체장의 모습들이 연일 지면을 도배해도 자정의 소리가 너무 작다. 진실추구형의 기자는 멸종위기를 맞은건가. 대구경북에서 기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한다면, 대구경북의 역사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과 올바른 사관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기억, 마주서다'는 현재의 지식인에게 기자들에게 신선한 기본텍스트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본텍스트를 통해, 정치지배집단이 무엇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며 조작된 사건은 조작자는 제외된 채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형성하며 보편화됐는지 짐작하게 될 것이고, 자발적으로 안목을 넓혀 더욱 역사적 과거를 탐구한다면 현재의 여러 상들의 연기(緣起)가 보일 것이고, 어떤 미래들이 어떻게 설계될 것인지 예측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도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왜 '독립운동도 죄가 되는 나라('기억, 마주서다' 제6부)'인지, 왜 지금 대구는 다른 것에 대한 조명보다 '국채보상운동'을 '2.28민주운동'을 크게 자랑하는지, 정리 또한 될 것이다.
 지금 대구는 어떻게 되어가나. 역사의 대구는 기억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기해년 새해! 대구경북의 모든 뜻있는 기자들에게 문운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케이비에스대구 '기억, 마주서다'는 2018년 제21회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았다. 엠비씨, 시사인, 베이비뉴스, 에스비에스, 서울신문, 한겨레21도 같이 받았다.)
 

 
 






[유영철 칼럼 18]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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