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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청년 노동자의 공장 출근길

기사승인 2019.01.04  22: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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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복 입고 편의점서 김밥·라면 끼니 때우며 기숙사 출퇴근하는 왜관산단 철강설비 생산 무기계약직
'박근혜 퇴진촛불' 고교생→TK 유일 '특성화고노조' 조합원 "다치는 이 없고, 힘 없는 이 행복한 새해를"


회사 사명이 오버로크(휘갑치기)된 검은색 공장 작업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한 청년이 아침 일찍 부르튼 손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종종걸음으로 어딘갈 향했다. 안경을 들어 잠기운이 남은 눈을 비비고 밤새 베개에 눌린 뒷머리를 매만지며 인적이 드문 산업단지 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 편의점서 아침 끼니를 때우는 청년 노동자 이학선(20)씨(2018.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밥 한줄, 우유 하나를 계산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끈해진 음식을 작업복 앞섶에 담아 편의점 안 간이 식탁에 앉았다. 어떨 땐 라면, 어떨 땐 빵이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건 이제 일상이다. 2019년 새해 첫 날을 하루 앞둔 12월 31일 아침 7시 50분 스무살 청년 노동자의 공장 출근길이다.

이학선(20)씨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 3산업단지에 있는 한 철강 가공설비 공급업체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포스코에서 만든 철강 코일을 평평히 펴고 잘라 라인을 까는 기계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공장 옆 5분 거리 회사 기숙사에서 매일 이 시간 출근을 하고 잔업을 할 땐 오후 9시쯤 퇴근한다.

   
▲ 한산한 왜관산단...아침을 먹고 공장으로 향하는 학선씨(2018.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학생 같아요? 작업복 입고 슈퍼 가면 신분증 검사 안해서 멋쩍던데"(2018.12.31)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본가 대구 집은 주말이 돼서야 나갈 수 있다. 산단에 대중교통이 없고 개인 차량도 없기 때문에 동료들 차를 얻어 타야한다. 주말에는 주로 동네 친구들을 만나 평범한 스무살들처럼 어울린다. 

새해를 앞둔 아침에도 어김없이 편의점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운 학선씨는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공장으로 향했다. 한겨울 아침 햇살이 제법 따뜻해도 찬바람은 작업복 사이로 숭숭 들어왔다. 장갑을 두겹껴도 부르튼 살갗은 돌아올 줄 모른다. 아침 8시 10분쯤 학선씨는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 일대에는 이미 국민체조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모든 노동자들의 통과의례다.

학선씨는 지난해 2월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공업계열 특성화고인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 실습생으로 온 지금 회사에 자연스럽게 취업해 1년째 일하고 있다.

   
▲ "여기까지, 이제 그만 따라오세요~" 공장 입구에선 학선씨(2018.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년 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앞서 2016년 11월 5일에는 '박근혜 퇴진 1차 대구시국대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무대에 올라 본인이 작성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었다. 원래 '일베(극우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가까웠었다는 학선씨가 당시 촛불을 들었던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교복을 벗은 지금은 최근 국내에 설립된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의 유일한 대구경북 조합원이다. 스무살 구의역 김군·이마트 이군, 열아홉살 콜센터 홍양·음료공장 이군 등 또래의 특성화고 출신 현장 실습생들과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할 수 있을게 없을까 고민하다 가입했다.

   
▲ 고2 학생 때 '박근혜 퇴진' 대구시국대회에서 발언하는 학선씨(2016.11.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촛불을 든 고등학생에서 이제 청년 노동자가 된 학선씨의 기해년(己亥年) 새해 소망은 간단했다. 다치거나 죽는 이가 없길, 힘 없는 이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는 "운이 좋지 않아도, 가난해도, 못살아도, 공부를 못해도 김용균씨처럼, 구의역 김군처럼 다치거나 죽는 이가 없길 바란다"며 "힘 없는 모든 이들이 지난해보다 조금 더 행복한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고 촛불을 들었던 나 같은 사람의 열망을 안고 당선됐으니 촛불정부라는 말에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면서 "힘 있는 사람들의 궤변에 흔들리지 말고 할 일은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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