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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제일 친해? 누구랑 제일 잘 지내?

기사승인 2019.03.12  16: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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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정 /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슬아 지음 | 헤엄 펴냄 | 2019)


누구랑 제일 친해?
누구랑 제일 잘 지내?
누굴 제일 좋아해?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머릿속엔, 마음속엔 누가 떠오르나요?
갑순이, 갑돌이, 철수, 영희, 제임스, 제니?
남친, 여친, 남편, 아내, 엄마, 아빠, 아들, 딸?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이 머리와 마음을 스치며 떠오르고 그 얼굴 위에 동그라미, 가위, 세모를 남기며 고르고 있죠? 아님, 혹시...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머릿속에 자꾸 자꾸 파들어가고 있나요? 화목한 가족, 사이좋은 친구, 좋은 인간관계, 폭넓은 대인 관계....

이런 것들은 우리가 다 좋아하고, 그렇게 되고 싶은 좋은 사람, 행복한 삶의 기준이기도 하지요.
근데요, 가족과 화목하기 위해, 친구와 사이좋기 위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이웃과 타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우선 존재해야 하고, 건강하게 존재해야 하고, 기운차게 존재해야 하는 게 있잖아요. 저는 이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그것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 일간 이슬아 구독자 모집 포스터

이 책을 쓴 사람이자 이 책의 주인공 과슬이(과거의 슬아), 현슬이(현재의 슬아), 미슬이(미래의 슬아)인 이슬아는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창작자입니다. 2013년 데뷔 이후 여러 잡지와 웹튼 사이트에 원고를 보내며 연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답니다.

이슬아는 학자금 대출 이천오백만원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 프로젝틀 시작했답니다. 자신의 글을 읽어줄 구독자를 SNS로 모집해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월 1만 원을 받고 월화수목금 평일 동안 매일 한 편의 수필을 구독자의 메일로 직접 발송하는 거죠.

그렇게 쓴 글을 묶어 이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를 만들었습니다. 책 만들기와 판매까지도 슬아와 웅이, 복희, 찬이가 가내 수공업으로 하다가 바로 얼마 전엔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고 하네요.

 
 

난 복희의 밥을 얻어먹으러 그들 집에 자주 방문한다. ... 낡은 빌라 계단을 밟고 올라가 신발장에 들어서서, 슬이 왔어요! 라고 말한다. 복희는 너무나도 맛있는 냄새 속에서 뭔가 부지런히 볶거나 끓이거나 튀기느라 여념이 없고 웅이는 옆에서 업무 관련 통화를 바쁘게 하고 있다. 만약 웅이가 바쁘지 않을 경우 그는 높은 확률로 내게 이렇게 묻을 것이다.
슬이~ 오늘은 무슨 자랑할거냐?그럼 나는 망설이지 않고 웅이에게 오늘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랑을 하루라도 거르면 몸살을 앓는 인간이라서 그렇다.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그런 하루란 무수히 많다. 그런 날에는 코딱지만 한 자랑거리라도 찾아낸다. 오늘 아침의 쾌변, 인스타그램을 무려 하루나 하지 않은 것, 턱걸이를 3개월째 연습하고 있는데 아직 한 개도 하지 못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 아직도 신분증 검사를 받는 것, 데이팅 어플에서 매칭된 사람과의 우스운 채팅 내용 등 부모 앞에서 하찮은 일도 자랑이 될 수 있다.
(책 본문 중에서)


이 장면을 읽을 때 정말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웅이는 슬아에게 자랑을 하라고 부추기고, 슬아는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는 무수한 날들이지만 코딱지만한 자랑거리를 찾아내서 으쓱으쓱 자랑을 하는 장면을 읽으며 나도 자랑을 들어주는 사람, 아니 자랑을 부추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떤 날은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어도 코딱지만한 자랑거리를 찾아내서 자랑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둘은 어떤 일로 조금 싸우기 시작했다. 며칠 전 지나간 일에 대해 서운했다는 얘길 울이 꺼냈고 류는 잠자코 들었다. 잠자코 듣다가 류가 말했다.
울아, 이젠 그러지 않을게. 다음엔 꼭 잘할게.
좁은 방에서 둘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서 도망치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옆에서 짐을 싸던 나는 가슴이 아파졌다. 저렇게 단순하고 묵직하고 확실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사과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나날이 기억나버려서다.
(책 본문 중에서)

서로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묵직하고 확실하게 사과할 수 있다면 잘못이 크더라도 다시 서로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슬아 친구 울과 류는 그렇게 사과할 줄 알았고 슬아는 그것 볼 수 있었던거죠.

있잖아.
응.
그래도 어쨌든 다 혼자지, 그치?
나는 혼자가 너무 싫은 나머지 괜히 그렇게 말한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얘는 조금 웃으면서 나를 엄청 세게 껴안는다. 안 그래도 무겁지만 허벅지는 근육 덩어리라 특히 더욱 더 무겁다. 그 몸의 센 포옹을 감당하다가 숨이 막혀서 나는 갑자기 조금 혼자이고 싶어져 버린다. 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마음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다. 순식간에 혼자여도 괜찮다고 믿게 된 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얘랑 먹을 아침 메뉴를 고민한다.
(책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 슬아는 하마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주 같이 자자고 말해요. 근데 자주 혼자이고 싶기도 해요. 같이 자는 것과 혼자인 것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자주 찾아가는 슬아가 참 보기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슬아가 친구 도이에게 쓴 편지의 구절을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남깁니다.

"하지만 도이야, 우리는 알고 있지. 스스로를 잘 돌보는 사람이 타인도 잘 돌본다는 거"


매일 매일의 자기를 세심하고 솔직하고 과감하게 써낸 -그러면서도 함부로 다 드러내지 않은 슬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도 자기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자기를 잘 챙기고 자기와 친하고 자기와 잘 지내고 자기와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내게 슬아는 참 새로운 사람이었어요.

 
 
 






[책 속의 길] 163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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