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중구 '남산4-5 주택 재건축(900여세대 아파트) 정비사업 지구'. 사방이 빽빽한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작은 동네. 서문시장 '양말골목' 옛 명성을 보여주는 간판만 한 때 잘나간 동네의 성격을 가늠케한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긴 타원형으로 가려진 단독주택과 노포들이 보인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동네는 IMF 때 싼 값에 밀려온 이들이 터를 잡으며 작은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보증금 200~300만원 / 월20~30만원 재래식·공동 화장실이 수두룩하다. 열악했기에 삶의 터전을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또 그 가난을 이유로 '도시정비'라는 이름의 재건축 대상이 됐다.
여기 28집은 남산동에 남겨졌다. 골방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70대 노부부와 반지하에서 가요교실을 운영하는 무명가수, 수 억원 권리금을 주고 슈퍼마켓을 연 40대 가장, 한 푼이라도 벌려고 뒤늦게 꽃케익집을 연 모녀, 30년 동네 맛집으로 통하던 고기집 사장님, 70년 평생을 남산동에서 국수집을 하던 할머니, 7년차 30대 네일샵 사장님,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철거민 신세가 된 학원 선생님.
남산동에서 밀려나면 또 어디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할지 막막한 이들은 '남산4-5지구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유령 마을처럼 텅 빈 작은 동네에서 여전히 살아가며 공동체를 지키고 있다. '갈 때까지 가보자', '죽어도 못나간다 투쟁', '죽을수 있어도 물러설 수 없다(수사불퇴.雖死不退)', '보상 없는 이주대책은 투쟁으로 항전한다', '세입자 재산권 말살하는 재건축', '세입자 무시하는 중구청장은 물러나라'. 거칠고 절실한 말들이 현수막으로 나부낀다. 세입자들은 한때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이 공사를 위해 동네 입구를 막고 펜스 작업을 하려하자 전쟁 같은 싸움을 치룬 뒤 자구책을 마련했다. 나름대로 조를 꾸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동네 입구를 지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방범을 돈다. 세입자들은 생계와 병행하며 강제 철거에 저항 중이다.
"여기서 나가면 내 나이에 뭐 해먹고 살겠나. 생활, 생계 다 여기에 있다. 재개발은 풀 한포기 다 보상해주고 재건축은 그냥 나가라니 있는 놈들이 법 내세워 배 채우려 하는 것 아니냐. 여기 보다 싼 곳이 어디 있다고 나가나.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니 답답하다. 소송으로 위압감 주고 젊은 것들이 욕하면서 나가라고 하고. 몇 천원 더 벌려고 골방서 자고 먹는데...쫓아내도 다시 돌아와 장사할 판이다"
"30년 터 잡고 단골도 생겼는데 1원 한 푼 없이 나가라니. 힘 없는 약자들한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명도소송이 날아오고 하니 다 포기하고 나갔고 28집 남았다. 딸린 식구들만 60명이다. 용역들은 아시바(철골) 작업 한다고 밀고 들어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구청에 가니 성만 내고. 있는 자들이 밀어 붙이면 우리는 밀려나야 하냐. 어디로 또 가야하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건축 세입자도 지원할 수 있도록 최근 조례를 만들었다는데 법이 잘못됐으면 고쳐야지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업무방해 고소장을 날리고 손해배상청구소송 공문 붙이고 죽으라고만하고 솟아날 방법이 없다. 삶의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우리는 절실한데 중구청은 펜대만 굴리고 있다. 생존권을 말살하는 악법도 법이라고 지켜야 하나. 대체상가라도 마련하든가...이대로면 제2의 용산참사가 날까봐 우리도 무섭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