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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야

기사승인 2019.07.10  1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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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포럼] 성염 / "6· 25 전후 희생된 양민 100만...제2기 진실화해위 출범은 문재인 정부의 사명"


   "선상님, 어디 가쇼?" 
   "문정 갑니다."
   함양읍에서 필자가 사는 문정으로 들어가는 군내버스 안. 술이 거나한 노인이 말을 걸었다.
   "말씨가 여기 사람 아닌데?"
   "네, 귀촌해서 그 동네 삽니다."
   "거기 이 아무개, 강 아무개 사는데."
   "이선생님은 윗마을 도정 살던 분인데요?"
   "하갸, 그 친구도 조합장하던 강 아무개도 죽었다지."
   "……" 조금 있다 화제가 바뀌었다.

   "선상님, 나, 사람 아니요."
   "네에?"
   "나 대한민국 육군 대위요. 내 나이 여든일곱이오. 근데 나, 사람 아니요. 보도연맹이라고 잡아 오면 다 쏴 죽여 뿌렸소. 쫄병이든 장교든 대령이든, 그 짓 하고선 사람 아니요."
   "……"
   "딸은 나더러 이런 말 지발 입 밖에 내지 말라카지만... 선상님, 나, 사람 아니요."

필자한테서 위로 한마디 들을 겨를도 없이 버스는 대포마을 입구에 섰다. 차에서 내린 노인은 지리산 쪽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휘적휘적 마을길로 올라갔다. 3년 전 일이다.
 
 대포마을 노인의 취중 이야기

  지난 6월 25일, ‘지리산종교연대’의 일원으로 단성 외공리 골짜기를 다녀왔다. 실상사 스님들, 함양 목사님들, 산청 신부 수녀님들, 남원 원불교 교무님들이 함께하는 환경운동이다. 저 1951년 2월, 설날 직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 280여 명(현재까지 유해가 발굴된 수)의 양민이 대한민국 국군의 카빈 총알을 맞고 죽어 묻혔다! 손을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뒷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은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리였다. 사건 후 60여 년이 지나고 2008년에야 발굴이 이루어진 유골들은 20대의 청년들, 여자들, 그리고 어린이들의 것이었다. 특히 어린아이의 유골이 여성 유골의 늑골과 팔뼈에 꼬옥 안겨 있는 광경은 발굴자들을 눈물짓게 했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모성애는 가해자들의 해악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어림수로는 6· 25 전쟁 전후해서 남한에서만도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의 손에 학살된 양민이 100만에 이른다. 그런데 외공리 희생자들을 두고는 가해자가 어느 군부대인지, 피해자가 어느 지역 사람들인지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인근 주민들의 구전으로는 장갑차를 앞세우고 여남은 대 버스로 흰옷 입은 남녀를 실어와 소정골 골짜기로 끌고 올라가 ‘콩을 볶았다’는 것뿐.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힌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2014.10.2)...'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1950년대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500여명이 코발트광산에서 사살됐다./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외공리, 어린애 유골을 안은 여성 유골

   한 주 전 판문점에서 있었던 북미회담을 지켜본 국민들의 안도감이라니! 또 7월 2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한테 귓속말로 들려준 회담내용을 흘리듯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종식”을 언급한 발표는 인류사회 전체에 희소식이었다! 국제사회의 진솔한 반응은 저 회담 직후 “지난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한국에서 만남 문화의 좋은 사례를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로 맨 처음 나타났다. 국제사회의 염원대로, 한반도를 70년간 에워싼 적대관계가 풀려야 한다. 남북 간, 북미 간 적대관계가 종식되어 가는데 발맞춰, 아니 그보다 먼저, 남한에도 켜켜이 쌓인 적대관계가 풀려야 한다. 

   함양 군내버스에서 만난 저 노인이 생판 모르는 외지인에게 취중진담처럼 보도연맹 일을 털어놓은 까닭이 무엇일까? 살날도 많지 않아 자기 총에 죽어간 젊은이들을 저승에서 만나야 한다는 부담 또는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다면,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부터 위임받은 중대한 사명 하나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서둘러 출범시키는 일이다. 제주와 여순, 황해도 신천 등지에서 벌벌 떨며 울부짖던 양민들에게 총질한 범죄자들이 스스로 진상을 고백하고 하늘과 겨레에 용서를 받으며 눈 감을 나이들이 되었다. 그리도 믿었던 군경의 손에 가족을 살해당하고서 까닭도 모르고 숨죽여 살아온 이들이 이제 진상을 알고, 제사상이라도 번듯이 올리고서, 할 수 있다면, 가해자 집단에 용서를 베풀며 편안히 눈감을 나이가 되었다.

   
▲ 원혼비(冤魂碑). 대구 민간인 학살터, 가창댐 맞은편에 세워진 백비(白碑)(2018.8.30) / 사진. 평화뉴스
   
▲ 대구 가창댐 맞은편에 백비를 설치하고 있는 유족들(2018.8.30.가창면 용계리) / 사진. 평화뉴스

   필자는 지난 주말 원주에 간 길에 ‘박경리 문학의 집’에 들렀다. 저 함양 노인이 젊어서 내갈긴 그런 총질로 젊은 남편을 여의고 평생을 펜촉 하나에 의지하여 살다간 한 여인의 가난한 바람이 그 집 문간에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옛날의 그 집"에서)

   
 
   
 








글쓴이 :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다산연구소 - 다산포럼] 2019-7-9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다산연구소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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