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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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한 달여 전인 지난 7월 20일 조국은 페이스북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점을 생각하며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자. "법학에서 '배상'과 '보상'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배상은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보상은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 받은 것은 아니다." 대일여론전의 선봉에 선 조국은 이 말에 권위를 부여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라고. 친일 반일 프레임이라며 그때 보수언론의 반발도 많았으나 그는 아랑곳 않고 당당했다. 조국은 그때가 생애에서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였던 것 같다. 그의 말이나 글은 그대로 기사가 되기에 바빴다. 그런데 조국은 한 달 새 변태를 하고 말았다. 옛날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의 주옥같은 말이나 금강같은 글은 생명을 잃고 말았다. 지상부에 드러난 잎과 줄기와 꽃은, 지하부의 뿌리와 호응을 하지 않는, 문장으로 치면 문맥이 안 통하는 비문(非文)의 구조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누구나 ‘감명을 주는 좋은 말(=글)’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좋은 말’과 ‘그 말을 한 사람’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만약 떼어놓아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닌 것이 된다. 오히려 떼어놓아야 자연스러워진다면 그 말과 그 사람은 동질성이 전혀 없는 관계가 된다. 누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엇하나라도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 한테 점심 한 그릇 사는 데에도 인색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 만약 한다면 자신의 인색함을 고백하고 성찰하고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 말을 발원하듯 해야하는 게 말의 이치이다. 말은 그래서 그 사람의 인품 인격과 같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구사하더라도 그 말을 한 사람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국쯤 되면 그런 말(=글)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조국과 우리가 맺은 암묵적인 언약이다. 왜냐하면 모든 말(글)은 진정성, 또는 진실성, 정직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말은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양치기소년의 말(글)도 기반은 진정성이었다. 조국이 우리와 언약한 바 있건 없건 우리가 조국과 언약한 바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언약이 아닌, 자신과 자신이 하는 말(글)과는 동질성이 없다면 동질성이 없는 점을 먼저 밝혀야 한다. 곧 자신의 말은 망어(妄語), 양설(兩舌), 기어(綺語)임을 커밍아웃하듯 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조국은 말을 하는 계속하는 바람에 조국의 인지도와 인기는 점점 올라갔다. 조국도 도취된 듯 더 좋은 말을 해왔다. 조국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와 ‘치유의 인문학’이라는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젊은이에게 솔직담백하게 다가가면서 호흡을 같이 했다. 아니 호흡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제 ‘온몸이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 아주 형편없이 엉망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네이버)’이라는 뜻의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조국은 신문의 사설에서도 조롱받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아니 지난 한달간 우리는 그를 지지했건 안했건 찬성이건 아니건 서서히 그를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조롱하는 우리는, 그를 절대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학생회에서도 반대하는 것 따위를 보면서 한편으론 신이 났을 수 있다. 경신고에서 서울대에 몇 명 들어갔다는 게 큰 뉴스가 되고 경신고 주변 부동산값이 대구에서 가장 높다는 게 때때로 나오는 주요경제뉴스가 되는 작금에, 시골에서는 어느 집 외손주가 서울대에 입학하였다는 것마저도 플래카드를 붙이는 작금에, 조국 같은 서울대 출신을 지금처럼 조롱할 수 있다는 게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서울대 중에서도 법대, 그리고 학사 석사 박사에다 미국의 대학 석박사인 조국이 아닌가.

조국 / 사진 출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2019.9.6)
조국 / 사진 출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2019.9.6)

 점입가경이란 문자를 이럴 때 쓰는 게 허용된다고 보고 이어가자면, 조국은 그것도 모자라 서울대 법대 교수가 아닌가. 서울대 법대 교수와 청와대 민정수석(폴리페서)! 언제 우리가 가까이 쳐다본 적도 없는 이런 인물을 그동안 마음대로 조롱한 것이 아닌가. 뉴스밸류가 이만큼 높은 뉴스소재가 어디 있었던가.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떠오르고, 탁월한 검투사가 벌이는 경기를 보는 로마시민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투기장 안에는 대통령도 바꾼다는 거대언론들도 투사가 되어 한달 내내 경기를 벌였다. 국회의원들, 특히 조국과 서울법대 동기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도 고농도 에너지를 발산하며 투기장에서 열기를 뿜었다. 투기장의 조국은 참(慚)도 없고 괴(愧)도 없는, 무참무괴(無慚無愧)의 모습, 마치 로봇같아 보였다.

 다시 떠올려 보면 참으로 굉장한 사람들이 열연했고, 전국민이 놀아났다. 좌건 우건 진보건 보수건 그들이 어떻게 그들대로 살아왔고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을 다니고 의전원을 다니는지 굉장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며 그것의 일반화는 오류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 점 간과하지 않으면서 맥락을 이어간다). 그런데 모든 기사거리를 발굴하며 열연한 언론사들과 이를 근거로 목소리를 높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보람은 당장은 없어 보인다. 잠시 장내정리 하는 그 사이에 조국의 딸과 비슷한 모양으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장재원 국회의원의 아들도 등장하고 나경원 원내대표의 아들도 등장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차치한다.

 진정성 없는 말(글)로 청소년 뿐아니라 전국민을 기망한 서울대법대교수 민정수석 조국은 이제 법무장관이 되었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이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검찰개혁은 성공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정성 없는 말(글)처럼, 진정성은 없지만 그 말(글) 자체는 누가 봐도 훌륭하고 좋은 내용이 아니겠는가. 부인이 구속되건 어찌되건 보고도 안 받고 법무로봇처럼 개혁의 요체를 짚어낼 게 아닌가. 자유한국당은 로봇과 씨름해야 할 것 같다.
 이 즐거운 한가위, 달밝은 추석에 조국은 또 우리에게 풍성한 안주를 제공해 주고 있다.      
 
 
 






[유영철 칼럼 19]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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