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72.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씨는 18일 대구 생명평화나눔의 집에서 열린 월성원전 이주대책 천막농성 5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최인접 마을 나아리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한지 5년. 원전제한구역(원자력안전법 제89조, 제한구역 EAB) 914m 대상에서 빠진 원전 1km 안 3개 마을 주민들은 꼼짝 없이 '원전 감옥'에 갇혔다.
싸움은 2014년 8월 25일 시작됐다. 주민들은 1984년 가동된 월성 1호기 뒤이어 들어선 2~4호기 등 원전 6기에 쌓여 불안의 세월을 버텼다. 위험성을 알지 못한채 살다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이어 경주 지진이 발생하자 더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과학적 증거를 모으기 위해 주민 소변 검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삼중수소(3H)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양남·양북면·감포읍 주민 체내 삼중수소 검출률은 89.4%, 원전서 50km 떨어진 경주 시민 검출률은 18.4%였다.(2011년 자체 조사). 2015년 나아리 5~19세 어린이·청소년 9명 등 주민 40명 소변검사에서는 모두에게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삼중수소는 암 유발 인공 방사능 물질이다. 월성원전 같은 중수로 원전에서 발생한다.
'이사가면 되지 않냐'는 조언은 속 편한 비아냥으로 들린다. 집을 내놔도 원전 마을 집을 살 사람이 없다. 평생 집 1채 마련했는데 팔리지 않으니 벗어날 수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야 다 접고 남는다해도 자식과 손주가 마음에 걸린다. 때문에 죄인된 심정으로 할머니는 5년간 전국을 유랑했다. 경주시, 경주시의회,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안전위원회, 국회, 청와대 안 찾은 곳이 없다. 하지만 그때마다 914m 마법같은 숫자에 얽매여 원전 1km 밖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한수원 직원과 원전 전문가들은 "안전하다", "기준치 이하다", "깨끗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탓일까. 가장 싫어하는 말이 '기준치'다.
하다하다 안되니 황씨는 이날 반나절 걸려 대구까지 왔다. 그는 "전기 만드는 공장인줄 알았다. 절대 방사능이 안나온다니 그냥 믿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애들, 이웃들이 다 피폭됐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집만 팔리면 내 발로 나가겠는데 누가 집을 사야지. 팔수 없으니 나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한수원이 사택을 지을 때 마을 부지를 사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결국 원전서 한참 떨어진 곳에 사택을 짓더라"며 "그렇게 안전하고 좋으면 왜 여기에 안사냐. 한수원 직원 가족은 다 대도시에 살고 본인도 주말이면 떠나지 않느냐. 어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분노는 도시로 이어졌다. 대도시가 쓸 전기를 위해 피해를 지역이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비판이다. 황씨는 "서울, 대구, 대전, 인천서 쓸 전기로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면서 "값싼 전기를 명목으로 언제까지 월성에 희생을 강요할 것이냐. 억울해서 미치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황씨는 "사방이 피폭되고 집은 안팔리는데 또 핵쓰레기를 떠안으라니 너무하다"며 "탈출하고 싶다. 떠나고 싶다. 이주대책을 만들어 주기 전까지 원전 가동도 고준위방페장도 모두 안된다. 탈핵정부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답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주대책위가 제안한 방안은 월성원전 반경 914m를 기점으로 1km를 완충구역으로 설정해 이주시키는 것이다. 1,400세대(3천여명) 이주 비용은 2,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산한 8조5천억원(반경 3~5km, 12만여명)에 비하면 훨씬 적다.
한편, 월성이주대책위, 탈핵경주·울산시민공동행동, 고준위핵쓰레기추가저장소건설반대울산북구주민대책위 등 4개 단체는 오는 21일 오후4시 경주시 동해안로 671 월성원전홍보관 옆에서 '천막농성 나아리 5년 방문의 날' 행사를 연다. 이들은 당일 상여를 메고 원전 일대에서 '원전 OUT' 행진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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