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백조다방·더폴락...재개발에 '100년 북성로'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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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중구청 1906년 대구읍성 헐린 북성로 공구골목에 아파트 재개발 / "유산 다 사라져...아쉽다"

 

철거를 앞둔 북성로 골목 (2019.09.20.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철거를 앞둔 북성로 골목 (2019.09.20.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구 중구 북성로 일부가 주상복합건물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된다. 이곳은 중구청(구청장 류규하)이 근대 골목 풍경 재생 사업을 진행한 곳이지만 재개발로 인해 100년 모습이 사라진다. 

중구 태평로2가7-1번지 일대(17,432.6㎡)는 곧 철거된다. 100년 가까이 된 목조건물에 2016년 들어선 카페 '소금창고', 대구 첫 그랜드피아노가 있었던 '백조다방', 대구 1호 독립서점 '더폴락', 1950년대 상인들이 모여 생긴 공구골목 일부도 북성로에서 사라진다. '소금창고'와 '백조다방'은 문을 닫았고, '더폴락'은 약 100m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1950~60년대부터 북성로에 형성된 공구골목 일부도 철거를 앞두고 있다 (2019.09.20.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1950~60년대부터 북성로에 형성된 공구골목 일부도 철거를 앞두고 있다 (2019.09.20.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구 첫 독립서점 '더폴락'...공사로 인해 자리를 옮겨야 한다 (2019.09.19.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구 첫 독립서점 '더폴락'...공사로 인해 자리를 옮겨야 한다 (2019.09.19.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1906년 10월 대구읍성이 무너진 이래로 100여 년간 북성로에 조성된 적산가옥, 공구골목 등 대구 근대 풍경의 일부가 철거된 이후에는 '대구역센트럴포스시티'가 들어선다. '대구역센트럴포스시티 주상복합 신축공사'는 올해 5월 대구시 건축위원회에서 조건부 의결돼 지난 20일 사업승인이 났다. 시행사 (주)포스시티와 시공사 (주)현대건설은 지상 49층~지하 4층 아파트 5동(803세대), 오피스텔 1동(150호)를 짓는다.

중구청은 대구 근대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Renovation.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 사업'을 2014년부터 실시해 지금까지 31곳을 개·보수했다. 이 중 3곳이 대구역센트럴포스시티 사업 구역에 포함됐다.

피아니스트 이공주의 부친인 이상근씨가 1940년대부터 운영했던 카페를 새로 꾸민 '백조다방', 190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과 1937년에 지어진 소금창고를 새로 꾸며 시민들에게 사랑받은 카페 '소금창고'다.

1907년에 지어진 건물을 새로 꾸며 2016년에 문을 연 카페 '소금창고'(2019.09.19. 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1907년에 지어진 건물을 새로 꾸며 2016년에 문을 연 카페 '소금창고'(2019.09.19. 대구 중구 북성로) / 사진.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소금창고'를 운영한 김헌동(56) 믹스카페북성로 대표는 "100년 역사를 간직한 북성로 거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렇게 과거 모습을 간직한 거리도 대구시 관광자원이고, 미래에게 물려줄 재산인데 대구시가 너무 쉽게 개발승인을 해준 것 아니냐"며 아쉬워 했다.

공구거리에서 20년간 공구가게를 운영한 장모(52)씨도 "중구청이 '북성로를 살린다', '공구골목을 살린다'며 세금을 들여서 도시재생 사업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젠 다시 재개발 사업을 진행해 북성로의 정취가 다 없어지게 됐다"며 "과거 유산을 남기려 하지 않고 무조건 새로운 것만 지으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와 중구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직 대구시 건축주택과 담당관은 "재개발 사업 공사 승인은 주택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됐다"며 "현재로선 아쉬움이 있겠지만 법적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중구청 한 관계자도 "리노베이션 사업은 중구청에서 진행한 게 맞지만, 재개발 사업 공사 승인은 대구시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 중구 북성로는 대구읍성 북쪽 성벽을 허물고 난 뒤 생긴 길로 일제강점기 대구군수였던 박중양(1874~1959)은 일본인들 요청에 따라 1906년 10월 대구읍성을 철거했다. 대구읍성 주변으로 조선인들이 만든 상권이 형성돼 일본인들이 새 상권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대구읍성이 있던 터를 길로 닦은 게 현재 동성로-서성로-남성로-북성로다. 대구역 앞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중심 지역 최대 상권이 됐고,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일본인들이 빠진 곳에 미군부대에서 흘러온 군수물자를 파는 상인들이 들어서 공구골목이 됐다. 때문에 일본식 적산가옥 등 근대의 풍경이 지금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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