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코발트광산, '빨갱이'로 '연좌제'로 숨죽인 69년..."2기 진화위 출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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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코발트광산 유족회 등 200여명 경산코발트광산서 합동 위령제
"돌아오지 못한 유해 3,000여구, 2기 진화위 출범시켜 발굴...국가는 희생자와 유족에 사죄·배상해야"

나정태 '사단법인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나정태 '사단법인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꽃다운 청춘에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빨갱이 집안이라는 누명을 쓰고도 모자라 연좌제란 사슬에 묶여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한 맺힌 세상을 살아온 미망인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나고 있다. 2세마저도 백발이 되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되려 한을 품고 가게 해선 안 된다."

나정태(73) '사단법인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대표이사의 말이다. 나정태 대표이사의 아버지는 1946년 '대구10월항쟁'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 나 대표이사가 세 살 때 일이다. 아버지는 4년 만에 석방됐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다시 끌려가 그 길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 대표이사는 "아버지가 경산코발트광산에 묻힌 것도 추정할 뿐이다. 나처럼 가족이 어디에 묻힌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때문에 "정부차원의 유해 발굴과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9년에 발표한 '경산 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경산, 청도, 대구 등지의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수 있다고 간주해 1950년 7~8월 경상북도 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에서 이들을 집단 사살했다.

진화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경이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 상태로 수감된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사살했다"며 "이 사건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해 재판을 거치지 않고 사살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결정했다.
 
박정희 무용가(현 대구 북구의회 의원)가 진혼무를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박정희 무용가(현 대구 북구의회 의원)가 진혼무를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69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사단법인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대표이사 나정태)'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산시 유족회(회장 박치간)'는 7일 경산코발트광산 수평2굴 앞 위령탑에서 장명수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이사 사회로 1시간가량 '제69주기 제20회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위령제는 박정희 무용가(현 대구 북구의회 의원)의 진혼무에 이어 전통 제례, 위령제, 반야심경 봉독, 사모곡 낭독, 헌화 순서로 진행됐다. 유족들은 위령제가 이어지며 눈물짓기도 했다.

위령제는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 유족회' 대표이사, 이상규 '경산코발트광산 유족회' 이사, 박치간 '경산시유족회' 회장, 채영희 '10월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회장, 김광호 '사단법인 전국유족회 부산유족회' 회장, 이경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 이장식 경산부시장, 강수명 경산시의회 의장, 노수문 광복회 대구광역시지부 지부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위령제에서는 유족들의 애틋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강혁준(72)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어머니는 남편을 찾아 면회를 갔지만, 형무소는 '진주로 이감됐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서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경산코발트광산에서 살해된 사실을 알았다. 30살의 어머니는 홀로 남아 4형제를 길러야 했다. 강씨는 "3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얼굴을 몰라 아버지가 더 그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사과하고 진실규명에 나서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주길 바란다"고 했다.

나정태 대표이사는 "코발트 폐갱도 속에 민간인을 집어넣고 희생시킨 만행을 현 정부는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억울하게 학살당하신 부모님들을 위해 투쟁하는 희생자 유족일 뿐"이라며 "유족을 여야 정쟁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고 선거 때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노수문 광복회 대구시 지부장이 대신 읽은 추도사를 통해 "4.19혁명 이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경산코발트광산 진상규명에 착수했지만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유족들은 빨갱이로 몰릴까봐 전전긍긍 숨죽이며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다"며 "다시는 이 땅에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지난 6월 26일 경산코발트광산 유해 52구가 세종시 추모의집에 임시 안치됐다. 이들 유해는 국가기관이 아닌 유족회 등 민간이 수습했다는 이유로 세종시 추모의집에 안치되지 못한 유해들이다. 세종시 추모의집에 안치된 경산코발트광산 유해 500여구는 대전 동구 낭월동에 조성 중인 '(가칭)전국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이 완성되면 이곳에 옮겨져 영면한다.

경상북도의회는 지난 2015년 '경상북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를 위한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유족들은 매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3,500여명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경산코발트광산 수평2굴 인근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2016년 11월에는 위령탑이 세워졌다.

하지만 2017년 3월 9일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11명이 발의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안'은 3년째 계류 중이고, 유족들은 경산코발트광산에 아직 유해 3,000여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때문에 유족들은 "조속한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과 정부차원의 유해 발굴 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경산코발트광산은 민간인 희생자 3,500여명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수평2굴)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경산코발트광산은 민간인 희생자 3,500여명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수평2굴)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경산코발트광산 수평2굴 내부(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수평2굴)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경산코발트광산 수평2굴 내부(2019.10.7.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수평2굴)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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