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비 털어 '이동노동자 쉼터'...정작 대구시는 '검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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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업체 김현기 대표 지난 8월 3천만원 들여 신암동에 8평 쉼터 "나도 배달일 해보니...쉼터 필수"
서울시 전국 첫 쉼터 설립 후 3년 지나도 대구시는?..."2020년 1월쯤 실태·수요조사 후 사업 추진"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은 배달기사를 위한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은 배달기사를 위한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 내부(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 내부(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구 유일 이동노동자 쉼터가 생겼다. 배달 일을 해본 한 배달대행업체 대표가 개인 돈으로 만든 곳이다. 정작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서울시가 쉼터를 만든 지 3년이 넘은 지금까지 '검토만' 하고 있다.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의 대구 동구3호점 대표 김현기(30)씨는 올해 8월 20일 동구 신암로54 3층짜리 건물에 배달 기사들을 위한 쉼터를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지난 4일 찾은 쉼터 곳곳에는 배달 기사들을 응원하는 글귀가 적혔다. 특히 '이곳은 생각대로 기사님들의 쉼터이자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곳'이라는 입구의 글이 눈에 띄었다. 쉼터 내부를 둘러보면 음료수가 가득한 냉장고, TV, 에어컨, 소파, 화장실 등 배달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기사들을 위한 각종 편리 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쉼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김 대표 본인이 1년 동안 배달업체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이동노동자로 뛰어보니 쉼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때문에 김 대표는 인테리어 비용 1,600만원 등 전체 비용 3,000여만원을 사비로 털어 쉼터를 꾸몄다. 연세(年稅) 650만원 뿐만 아니라 전기세와 식비 등 매달 유지비용 90여만원도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현재 전체 사무실은 26m²(8평) 크기지만, 조만간 쉼터를 더 확장해 기사들을 위한 공간을 늘린다는 게 김 대표 계획이다.

김 대표는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에 고생하거나, 쉴 곳이 없어 오토바이를 세워 잠깐 쉬거나, 화장실은 매번 빌려 쓰는 게 기사들 현실"이라며 "내가 일해보니 그렇더라.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사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사무실을 쉼터로 꾸몄다"고 밝혔다. 이어 "기사들이 편해야 나도 편하다"면서 "배달대행, 퀵배달, 배달 기사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우리의 이미지도 개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이곳은 생각대로 기사님의 쉼터이자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곳입니다"(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이곳은 생각대로 기사님의 쉼터이자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곳입니다"(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넌 배달할 때가 젤 멋져"(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 동구3호점..."넌 배달할 때가 젤 멋져"(2019.10.4.대구 동구 신암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대리운전 기사, 퀵배달서비스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노동 시간의 대부분을 길에서 보내는 이른바 '이동노동자'들. 이들은 정해진 일터가 없어 식사할 곳이나 대기할 장소 심지어 화장실도 변변치 않다. 때문에 노동계는 몇 년째 지자체에 이동노동자 쉼터 설립을 요구해 왔다. 이에 응답해 서울시는 2016년 휴(休) 이동노동자 서초 쉼터를 시작으로 2019년 현재 5곳(서초쉼터, 북창쉼터, 합정쉼터, 상암미디어쉼터, 녹번쉼터)에 쉼터를 설립했다. 창원시의 창원이동노동자쉼터, 광주광역시의 달빛 쉼터, 제주도 혼디쉼팡 쉼터, 서울 강동구의 강동구이동노동자지원센터, 부산시의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도 뒤이어 만들어졌다. 경기도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아직 뜸을 들이고 있다. 현재 대구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가 0곳이다. 예정조차 없다.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9월초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에 설립을 촉구하고 담당 공무원과 면담도 했지만 올해 하반기 추경도, 내년 예산 반영도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업체까지 사비를 들여 쉼터를 만드는데 정작 대구시는 노동자 안전과 복지에 너무 무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차준녕 전국대리운전노조 대구지부 비상대책위원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쉼터를 설치하고 있는데 대구시는 늑장을 부리고 있다"며 "개인업체도 쉼터를 설치하는 만큼 대구시도 하루 빨리 이동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대구시는 오는 2020년 1월쯤 지역 이동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동노동자 현황, 각종 불편사항, 수요를 파악한 뒤 이동노동자 쉼터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대구시가 설립하는 이동노동자 쉼터는 빨라도 내년 하반기나 2년은 지나야 하는 셈이다.

이종수 대구시 노사상생팀장은 "이동노동자 쉼터 필요성에 대해 대구시도 매우 공감한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 설립에 필요한 조사를 먼저 하고 예산이 확정되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동노동자들은 애가 탄다. 하루라도 빨리 쉼터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하나같은 바람이다. '생각대로' 쉼터에서 만난 배달기사 김모(30)씨는 "다른 동네에도 쉼터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고, 한모(34)씨는 "콜을 받고 나가면 쉴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면서 "마음 편히 쉴 있는 쉼터가 대구에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대구시와 대리운전노조 대구지부에 확인한 결과,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대리운전 업체가 운영한 이동노동자 쉼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대로' 동구3호점이 유일한 대구지역 이동노동자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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