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모텔·여인숙 등 이른바 '쪽방촌'에 사는 주민 100여명은 겨울철 철거민으로 내몰리게 생겼다.
#1.대구시 동구 신암동 A여관 1평 남짓 쪽방 주민인 손모(53)씨는 30일 한숨을 쉬었다. 5년째 살고 있는 A여관이 뉴타운 재건축 사업에 묶여 곧 헐리기 때문에 내년 2월까지 이 단칸방을 비워야 한다.
일용직 노동자인 손씨는 평소 수입이 불안정하다. 겨울에는 일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수입은 더 쪼그라든다. 그래서 월세 25만원만 내면 머무를 수 있는 한뼘방을 떠나기 힘들다. 손씨는 15살 때 보육원에서 나와 서울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28살이 되던 해 허리를 크게 다쳤다. 산업재해로는 인정 받지 못했다. 산재 자체를 몰랐다. 이후 구직 활동은 거의 포기했다. 몸이 버틸만할 때마다 일을 뛰었다. 그렇게 30년째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보금자리도 뉴타운으로 잃게 생겼다.
손씨는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 밖에 없지만 너무 막막하다"며 "여기서 나가면 이 겨울철에 갈 곳이 없다. 노숙이라도 해야하나싶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이만큼 월세가 싼 곳이 없다"면서 "결국 멀리 떠나거나, 더 비싼 월세를 내는 곳에 들어가는 수밖엔 없다. 그러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요새는 경기가 안 좋아 일거리도 많이 줄었다"며 "월 50만원도 겨우 버는데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밥 먹기도 빠듯하다. 하다 못해 최소한 이사비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기술도 없는 나를 누가 써주겠냐"며 "가족도 연락이 끊겼고 여관마저 철거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돈도 없고 일도 못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이어 "새 집을 구할 때까지만 잠깐 머무를 곳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이대로면 다시 노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신암동 245-1번지(55,466.3㎡)는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신암4동 뉴타운 주택재건축사업'이 시작됐다. '신암4동뉴타운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2020년 2월까지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철거에 들어간다. 이미 쪽방 10여곳 주민 수 십여명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남은 이들은 갈 곳이 없어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실제로 주거 이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신암동 일대는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100여명이 사는 '쪽방' 마을이 된 지 오래다. 보증금 없이 싼 월세로 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빈민층이 주로 산다. 때문에 쪽방 주민들은 ▲이사비 ▲임시 거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법적으로 이사비 등의 주거이전비가 지원되지 않는다. 때문에 조합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재건축은 세입자에게 보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상훈 대구시 도시정비과 주무관은 "법적 근거가 없어 지원이 힘들다"면서 "법 개정 진행중이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김기봉 동구청 건축주택과 담당자는 "세입자 문제는 조합에서 해결할 사항"이라며 "구청에서 세입자를 지원하거나 조합에 지원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등 11명은 올 2월 재건축 세입자에게도 일부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8개월째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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