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문화원' 또 다른 고문 피해자 2명, 재심에서 누명 벗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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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반공법 위반' 징역 고(故) 이복영, 이경운씨 유가족 "고문·불법구금" 재심청구→내년 1월 결심
앞서 같은 사건 5명은 재심서 무죄...당사자들, 토론에서 "당시 용의자만 74만명, 진상규명 진행돼야"

 
1983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 11면...미문화원 사건을 '간첩' 소행이라고 보도한 기사
1983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 11면...미문화원 사건을 '간첩' 소행이라고 보도한 기사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연행돼 징역형을 선고 받은 또 다른 고문 피해자 2명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폭파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을 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씨 등 5명은 재심을 통해 36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같은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다른 고문 피해자 고(故) 이복영, 고(故) 이경운씨의 재심 결심이 내년 1월 17일 열린다.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이복영(당시 59세)씨와 의료품을 판매하던 이경운(당시 73세)씨는 1983년 10월 미문화원 폭파 사건으로 연행됐다. 이들은 84년 2월 열린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 자격정지 1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들은 "잠고문, 폭행 등 고문을 당해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항소해 같은 해 7월 열린 2심에서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 1년과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이복영씨는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이경운씨는 지난 1990년 위암으로, 이복영씨는 지난 201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고(故) 이복영씨 / 사진 제공.이복영씨 유족
고(故) 이복영씨 / 사진 제공.이복영씨 유족
 
형사소송법(제420조)은 '원판결의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경찰관이 불법구금, 고문 등의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될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자녀들은 지난해 2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 "경찰은 구속영장이 나오기 전에 연행해 불법구금을 저지르고 수사과정에서도 고문이 이어져 자백을 강요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대구지방법원(제4형사부 이윤호 부장판사)는 이들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7일부터 재심이 진행됐다. 내년 1월 17일 이들의 결심 공판이 열린다. 다만 법원은 고문은 재심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화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발표한 '박종덕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따르면 1983년 9월 22일 대구미문화원에서 폭발물이 터져 고등학생 1명이 사망하고 경찰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국가안전기획부, 대구지방경찰청, 국군, 육군 등은 이 사건 조사를 위해 합신조(합동신문조)를 꾸려 용의자 74만9,777명을 선정해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폭파사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사건 이듬해 11월 합신조는 수사를 종결했다.
 
박종덕씨가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2019.11.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박종덕씨가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2019.11.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고문 피해 당사자 손호만씨 (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고문 피해 당사자 손호만씨 (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이와 관련해 2019 대구경북 인권주간 조직위원회(집행위원장 서창호)는 '대구미문화원 폭파사건 무죄판결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한 토론회'를 지난 11일 대구 중구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열었다. 폭파사건 용의자로 고문을 받은 박종덕씨가 피해를 증언하고 임채도 전 진화위 조사위원이 발제를 맡았다. 같은 사건으로 고문 피해를 입은 손호만씨, 이재동 변호사,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박종덕씨는 "그날 이후 내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백열전구만 깜빡이는 방에서 한 달 정도 고문을 받았다"며 "한 번은 닷새 동안 잠도 못 자고 맞기만 했다. 그런 식으로 고문을 당하면 온몸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고문에 버티지 못하고 거짓자백을 하니 정체성과 자존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더라. 밤만 되면 두들겨 맞는 꿈을 꾼다"며 눈물을 흘렸다.
 
임채도 전 진화위 조사위원(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임채도 전 진화위 조사위원(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당시 사건을 조사한 임채도 전 조사위원은 "용의자로 올랐던 74만명 가운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고문 피해자들이 존재할 것"이라며 "추가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사건자체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호만씨도 "우선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이후의 국가폭력 방지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월 1일 무죄 선고를 받은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 고(故) 우성수씨 등 5명은 지난달 26일 대구지법에 형사보상 청구소송을 냈다. '형사보상법'상 구금된 이후 최종 무죄가 확정될 경우 구금돼 있었던 일수를 계산해 구금된 해당 연도 최저임금의 최대 5배까지 보상하도록 돼 있다. 형사보상법상 보상청구를 받은 법원은 6개월 이내에 보상결정을 해야 한다. 이들은 형사보상 청구소송 판결이 나오는 데로 대한민국 정부(법무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예정이다.
 
대구미문화원 폭발사건 관련 고문조작 인권침해 사건 무죄판결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한 토론회 (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대구미문화원 폭발사건 관련 고문조작 인권침해 사건 무죄판결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한 토론회 (2019.12.11.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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