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강제철거'에 쫓겨나는 2천여 가구...손 놓은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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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재개발 230곳 중 23곳에서 이주 진행...지역 곳곳에서 세입자, 원주민들 "대책 마련" 호소
서울·광주시는 '겨울 강제퇴거 금지조례' 제정했는데...대구시는 "상위법 저촉", 시의회 "검토"

 
신암동 상가세입자 박명원씨가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2019.12.30.대구광역시청)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신암동 상가세입자 박명원씨가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2019.12.30.대구광역시청)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적으면 2,600여명, 많으면 10,400여명. 올 겨울 대구지역에서 재개발, 재건축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숫자다. 앞서 서울, 광주 등은 겨울철 퇴거를 조례로 금지했지만 대구시는 "상위법에 어긋날 수 있다"며 손을 놓고 있다.

대구시, 8개 구·군과 재개발·재건축 조합 등에 31일 확인한 결과 대구지역 전체 재개발, 재건축 사업 230곳 가운데 12월 현재 이주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23곳이다. 이주 대상은 2,600여 가구로, 1인 가구일 경우 2,600여명, 4인 가구일 경우 10,400여명이 겨울철(12월~2월)에 떠나야 한다.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은 주민의 4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해 나머지 주민이 반대하더라도 반강제로 이주를 해야 한다. 때문에 원치 않게 집을 잃는 원주민이나 세입자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A(53)씨 가족은 지난 17일 집에서 강제퇴거 됐다. 집이 '달서구제07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에 묶인 탓이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한 A씨 가족은 친척집에서 지내고 있다. 달서구제07구역재개발조합은 달서구 두류동 성남초등학교에서 두류 1,2동 행정복지센터까지 이르는 동네(40,545.1㎡)에 24층(지하3층)짜리 아파트 9개동(785세대)을 세울 예정이다.
 
A씨는 지난 17일 살고 있던 집에서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을 당했다 (2019.12.17) / 사진 제공.A씨
A씨는 지난 17일 살고 있던 집에서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을 당했다 (2019.12.17) / 사진 제공.A씨
 
서울시는 이 같이 겨울철 집을 잃는 원주민, 세입자 발생을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개정해 겨울철 동안 강제 퇴거를 제한했다. 광주시도 올해 4월 서울시와 같은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했고 부산시도 오는 1월 입법예고를 해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를 포함하는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다. 7대 광역시 가운데 3곳이 조례를 제정했거나 추진중인 셈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대구시는 상위법과 어긋날 수 있어 조례 제정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김병환 대구시 주택정비팀장은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 조례 제정은 상위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광주는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근거로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 조례를 제정했다"며 "상위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정법 제81조4항4호에 따르면 시장, 군수는 철거를 제한하는 시기를 규정할 수 있다.

서창호 반(反)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이미 세 지자체가 시행하거나 추진 중인 조례가 상위법 저촉 우려가 있다는 대구시의 설명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대구시가 조례 개정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폭력적 반인권적 동절기 강제철거를 규제하라"...겨울철 강제퇴거 금지 요구 기자회견 (2019.12.30.대구광역시청) / 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대구시는 폭력적 반인권적 동절기 강제철거를 규제하라"...겨울철 강제퇴거 금지 요구 기자회견 (2019.12.30.대구광역시청) / 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이와 관련해 반(反)빈곤네트워크, 정의당 대구시당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 10개 단체는 지난 30일 대구광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에 "겨울철 강제퇴거 규제 방안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또 "도시정비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조정하는 협의체 구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중 한 상가세입자는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를 요구하며 머리를 깎기도 했다. 상가세입자 박명원(54)씨는 "세입자들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라며 "12월부터 2월까지는 최소한의 인권을 생각해 강제 퇴거가 이뤄지지 않도록 대구시에서 감독해달라"며 머리를 깎았다. 박씨가 지난 17년 동안 장사를 해온 대구 동구 신암동의 한 가발가게에는 11월 25일까지 자진 퇴거하라는 내용의 계고장이 붙었다.

박갑상 대구시의회 건설교통위원장은 겨울철 강제퇴거 금지 조례에 대해 "다른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조례들을 살펴보면서 깊이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겨울철 강제 퇴거를 제한하고 지자체가 이주대책 및 손실보상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는 내용의 '도정법 일부개정법률안(윤관석 의원 등 11인)'이 지난 10월 25일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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