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텐트에서 새해 맞은 어느 '철거민'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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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 '원대동 재개발 사업'에 이주비 한 푼 없이 쫓겨나 5개월째 텐트 생활하는 기초수급자 부부
새해 첫날 영하 날씨에 난로 켜고 1평 남짓 텐트서 새해맞이..."더 이상 집 잃는 사람 없는 새해를"

 
재개발에 내몰린 어느 철거민 부부는 차디찬 아스팔트 위 텐트에서 2020년 새해를 맞았다.

지난 1일 대구시 서구 원대시장 건너 원대동 재개발 구역. 철거민 A(68)씨와 B(53)씨 부부는 아스팔트 위 1평 남짓 텐트에 몸을 뉘였다. 최저기온 영하 5도의 추위를 석유난로 1대와 몇 달 째 갈아입지 못한 패딩으로 버텼다. 좁은 텐트 한 쪽에는 생수병과 가스버너, 김치, 깍두기, 감자조림 등 각종 반찬통이 있다. 재개발 사업으로 8년을 살아온 전셋집에서 쫓겨난 지 다섯 달째,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철거민 부부가 텐트에서 모텔로 가고 있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철거민 부부가 텐트에서 모텔로 가고 있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최근에서야 대구 서구청이 이들에게 모텔비를 지원해줘 부부는 인근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텐트로 출근 아닌 출근을 한다. 텐트에는 '갈 곳 없는 세입자에게 이주비를 달라'는 절박한 요구가 적혔다. 손을 호호 불며 텐트에 들어간 부부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 이제는 생활이 된 한겨울 노숙 농성을 이어갔다.   

특별히 부부는 이날 텐트 근처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새해를 맞은 나름의 특식이다. 또 새해를 기념해 팔공산에 올라 생수통에 약수도 떠왔다. 점심에는 전 메뉴 '3,000원' 칼국수 집에서 외식도 했다. 국거리 콩비지를 푸짐하게 산 뒤 오후 1시쯤 이제는 농성장이자 집이 된 텐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나절 비운 텐트는 안팎의 공기와 별다를 바 없었다. 부부는 바로 난로를 켰다. 훈기가 도는 듯 했지만 부인인 B씨는 자꾸만 패딩을 여몄다. 그는 "갑상선암 치료를 받은 뒤 부쩍 추위를 더 타는 것 같다"며 "자꾸만 날이 추워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B씨가 밤새 얼어붙은 행주를 끓여 녹이고 있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B씨가 밤새 얼어붙은 행주를 끓여 녹이고 있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부부는 몇 달 째 옷 2~3벌을 돌려 입고 있다. 강제퇴거를 당하면서 챙긴 옷이 몇 벌 안 되기 때문이다. 미처 챙기지 못한 옷가지와 세간 살림은 모조리 법원이 압수해 갔다. 빨래를 할 땐 부부의 단골 식당에 물 사용료를 내고 손빨래를 한다. 아침밥은 주로 텐트에서 가스버너를 이용해 만들어 먹는다. 점심밥은 인근 복지관에서 한 끼 800원짜리 정식을 먹는다. 설거지는 인근 주민센터 화장실에서 허가를 받고 틈틈이 한다.

새해라고 서울 사는 아들에게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부부 전화에 B씨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애들은 잘 지내?"라고 묻자 휴대전화 너머로 손주들의 "할머니"하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 A씨는 "자식들이 타지에 살아서 자주 볼 일이 없다"면서 "다들 자기 나름대로 바쁜 것 같다"고 말을 줄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상황에 대해선 타지에 사는 4남매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오후 5시 해가 지면서 텐트 안으로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난로 1대로 한겨울 추위를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부부는 난로를 끄고 텐트 지퍼를 완전히 닫았다. 저녁밥은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보통 모텔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분식집을 가는데...오늘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발걸음을 모텔로 옮겼다.
 
텐트 한 쪽에 있는 부부의 가재도구, 반찬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텐트 한 쪽에 있는 부부의 가재도구, 반찬들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부부는 8년 살던 전셋집에서 지난해 9월 쫓겨났다. 재개발 사업에 집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전세금 2,000만원은 돌려받았지만 대출 1,900만원을 갚는데 대부분 썼고 수입은 기초수급비 월 58만원이 전부다.

주거이전비도 보상받지 못했다. 이전비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3개월 전부터 해당 주거지에 살아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는 2011년부터 살아서 2008년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된 재개발 사업의 주거이전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당장 머물 곳이 없어진 부부는 그 이후 살던 집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시작했다.

대구 서구청은 지난 11월 중순 긴급주거지원 제도로 부부에게 모텔 숙박비를 지원했다. 긴급주거지원은 생계가 곤란해 노숙을 하거나 화재 등으로 집을 잃은 사람에게 주거를 지원하는 제도다. 낮에는 텐트에서 지내고 밤에는 모텔에서 자는 생활이 반복됐다. 하지만 지원 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에 2월 16일까지 집을 구하지 못하면 부부는 다시 텐트에서 잠을 자야 한다.
 
부부가 다섯 달째 살고 있는 텐트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부부가 다섯 달째 살고 있는 텐트 (2020.1.1.대구 서구 원대동)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부부는 지난 1990년대 중반 결혼했다. A씨는 용접을 하면서, B씨는 원대시장에서 나물을 팔거나 설거지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부부는 지난 2010년 원대시장 안에 작은 식당을 차렸다. 하지만 식당을 차린 지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아 B씨에게서 갑상선암이 발견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일을 하면 쉽게 혈압이 오르게 돼 B씨는 식당일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부부는 어렵게 차린 식당을 팔았다. A씨도 8년 전부터 고령을 이유로 일을 거부당하면서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경자년(庚子年)을 맞는 부부의 새해 소망은 간단했다. A씨는 "새해에는 나처럼 집 잃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집을 잃으면 우리처럼 힘든 사람들, 없는 사람들은 정말로 갈 곳이 없다"며 "무리한 강제퇴거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B씨는 "올해는 집을 구해 텐트 생활을 끝내고 싶다. 텐트에서 설까지 쇠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원대동3가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2008년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고 지난해 2월 이주가 시작돼 당초 1,279명이었던 주민은 100여명만 남았다. 원대동3가재개발조합은 원대시장 건너편 일대(69,796.4㎡)에 33층(지하2층)짜리 아파트 13동과 오피스텔 1동을 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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