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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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민주당만 빼자'는 주장,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칼럼을 자기 마음대로 작성하고 출고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때로는 선정적이고 선동적이고, 때로는 매혹적이다. “원래 칼럼이 그런 거 아닌가요?”, “칼럼은 개인의 주장인데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있나요?” 신문칼럼의 구성요건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은 나는 1차논문발표 때 외부심사위원들의 이 같은 질문에 이론적 배경을 보완하여 다음 발표 때 설득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자기만의 칼럼이 많은 이유는 일반기사는 객관성의 잣대로 쓰지만 칼럼은 주관성의 잣대로 쓴다고 알고 있고, 이 ‘주관성’이란 용어를 임의로 해석하여 완장을 찬 듯 필설을 휘둘러도 되는 것으로, 그게 잘 쓰는 것으로 착각하고 쓰기 때문이다. 칼럼은 신문사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칼럼을 쓰기 시작하는 중견의 기자들도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운다. 그러니 일반인은 가르치는 데가 없으니 배울 데가 없다. 칼럼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신문에 게재된 걸 보고 눈대중하고 체득하고 정의하고 칼럼을 쓴다.

 그러나 칼럼은 사적인 일기가 아니다. 읽는 상대가 있다. 칼럼은 주로 주장을 밝히는, 논증의 글이다. 논증이란 논증을 하는 사람이 논증을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글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것이다. 공적기관인 언론에 게재되는 칼럼을 만약 남들에 대한 배려없이 쓴다면 필경 그것은 오류의 칼럼, 나쁜 칼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칼럼들이 전국일간지 지방일간지에 보란 듯이 나돌고 있다.

<경향신문> 2020년 1월 29일자 31면(오피니언)
<경향신문> 2020년 1월 29일자 31면(오피니언)

 지금 임미리 칼럼이 논란의 대상이다. 경향신문 2020년 1월 29일자 게재된 <정동칼럼>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정치학박사의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에 열을 받은 민주당은 경향신문과 함께 외부필진 임미리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고발이 알려지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등의 비난이 무성해졌다. “나도 고발하라”는 동조도 생겨났다. 민주당 출마 후보들도 표가 깎인다고 아우성을 쳤다. 동아일보에서 칼럼을 쓴 바 있는 정치부장 출신 이낙연 전 총리도 고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고발을 취소했다. 그래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신문칼럼의 품격을 고민해온 나는 논증학자 툴민(Stephen E. Toulmin)의 논증모델 등을 토대로 신문칼럼이 갖춰야 할 구성요건을 도출했다. ‘주장(claim)’ ‘근거(data)’ ‘보장 또는 추론규칙(warrant)’ ‘반증(rebuttal)’ 등 4가지이다. 타당한 주장, 사실에 기초한 적절한 근거, 주장과 근거를 지탱하는 정당한 보장(추론규칙), 상대편을 배려하는 불편부당한 반증 등 4가지 구성요건을 충족해야 칼럼다운 칼럼이라고 설정하고, 일간지 칼럼을 대상으로 구성요건의 충족률과 논증의 오류를 분석한 바 있다.

 임미리 교수는 경향신문 외부필진으로 선정되어 2019년 8월31일자 <시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진영을 지킬 수 있다’는 칼럼을 처음 실었다. 그런데 일간지 외부칼럼은 일간지 기자들이 집필하는 내부칼럼과 비교할 때 논조 성향이 거의 같다. 조중동에 실리는 외부칼럼은 조중동의 그것과 같고 경향과 한겨레에 실리는 외부칼럼은 이들 신문의 그것과 같다. 외부칼럼을 오피니언면에 게재하면서 편집방향이 다를 수 있다고 의견의 다양성을 공시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외부칼럼은 신문사 내부의 담당게이트키퍼를 통과해서 실리기 때문이다. 임미리 칼럼도 경향신문과 논조 성향이 거의 같을 것이다.

<경향신문> 2019년 10월 9일자 27면(오피니언)
<경향신문> 2019년 10월 9일자 27면(오피니언)

 임미리 교수의 첫 <시론> 칼럼은 구성요건 측면에서 짜임새 있었다. 만만찮은 필력을 보였다. 그 다음부터 <정동칼럼>으로 옮겨 월1회 정도 게재하고 있다.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9월11일자), ‘대통령이 책임져라’(10월9일자), ‘민주노총은 정부에 경고해야 한다’(11월6일자), ‘산재와 계급 대물림’(12월4일자), ‘‘당의정의 달콤함’보다 중요한 것’(2020년 1월1일자)이란 칼럼이 ‘민주당만 빼고’ 앞에 실렸다. 이들 또한 일관성 있는 주제하에 요건을 갖춘 칼럼이었다. 특히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칼럼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부여했는데도 살아있는 권력을 대신한 군중과 그에 반대하는 군중이 맞붙는, 이런 적은 없었다’고 전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의 할 일이다’고 주장하는, 타당한 주장과 적절한 근거가 돋보이는 칼럼이었다. ‘검찰이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는 권력기관이라면 국민들은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발상도 참신했다.

 임미리 칼럼의 맥락을 여러 칼럼을 통해 대강 인지한 다음 7개의 문단으로 구성된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칼럼의 구성요건>을 적용하며 훑어봤다. 이 칼럼은 첫 문단이 서론, 둘째~여섯째가 본론, 마지막이 결론으로 짜여져 있다. 이 칼럼의 주장은 마지막 일곱째 문단 초입에 단언한 ‘더 이상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로 볼 수 있다. 근거로는 둘째 문단의 ‘행정부과 균열을 보이고 있고 여야를 대신한 군중이 거리에서 맞붙고 있는 점’, 셋째 문단의 ‘민주당의 이같은 처신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 촛불집회 결실을 대통령선거에 갖다 바친 점’, 넷째 문단의 ‘민주당은 촛불의 주역이 아닌 점’, 다섯째 문단의 ‘2016년 겨울에는 야당까지 포함한 정치권력이 국민의 요구에 굴복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정당과 정치권력이 다시 상전이 된 점’, 여섯째 문단 ‘‘죽 쒀서 개 줄까’ 염려가 현실이 된 점, 재벌개혁은 물 건너갔고 노동여건은 더 악화될 조짐인 점’을 들 수 있다. 농락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여 더 이상 농락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들이다. 그리고 주장과 근거를 연결하는 추론규칙으로 마지막 문단의 ‘국민이 책임이다,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정당 정치인을 길들일 수 없다’를 꼽을 수 있다. 반증은 주장과 근거가 뚜렷할 경우에는 없어도 하등 지장이 없는 요건인데 여기서는 둘째 문단에 장치된 ‘자유한국당에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가 이에 해당된다. 이렇게 구성요건을 분석해 볼 때 이 칼럼은 칼럼의 구성요건을 충족한 바람직한 칼럼이 된다.

 그러나 이 칼럼은 마지막 문단 마지막에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말았다. 민주당을 펄쩍 뛰게 한 이 문구는 강력한 주장이고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민주당만 빼자'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너무 약하다. 이 주장을 삽입했을 때는 민주당을 빼고 투표해야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주장에서 제외된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을 빼지 않은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고 마찬가지로 다른 정당들도 빼지 않은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이 주장도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만 빼고’가 왜 근거가 불충분하냐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첫 문단부터 제시한 정부 내부의 갈등과 여야 갈등의 주체는 민주당이 아닌가, 문단마다 제시한 민주당의 책임, 민주당의 예견된 처신, 민주당이 촛불주역이 아닌 점, 현재 민주당 집권기에 재벌개혁 둔화와 노동여건 악화가 발생한 점 등은 모두 ‘민주당만 빼고’를 입증할 근거로서 충분하지 않는가?

 ‘민주당만 빼고’라는 문구는 도발적이다. 매력적이다. 유혹이다. 이 문구 없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로 끝맺으면 뭔가 밋밋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스치듯 떠오른 이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근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근거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퇴고할 때 아쉽지만 지웠어야 했다. 절제했어야 했다. 다음 차례에 충분한 근거를 갖춰서 ‘민주당만 빼고’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은 마음대로 작성된 칼럼은 아니다. 이 문구만 없었다면 좋은 칼럼이 될 수 있었다. 







[유영철 칼럼 21]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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