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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말하는 것

기사승인 2020.04.29  12: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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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동 칼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 많은 민주주의'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경험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작가였던 움베르트 에코는 포스트 모던 시대인 현대를 서양의 중세와 비교하면서 ‘새로운 중세’라고 불렀다. 그가 엉뚱하게도 현대를 중세와 비슷하다고 하는 이유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붕괴 등 단일한 중앙권력의 통제력 상실과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유목성(nomad) 등 현대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들고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 시대에 팽배한 ‘불안감’을 들고 있다. 이는 ‘세계 안에 있지만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부를 수 있으며, 세상의 몰락이 가까웠다는 종말론에 기인한 것이다. 물론 중세 사람들이 생각한 세상의 종말은 계시록에 기인한 종교적인 것이었지만, 현대의 종말론은 핵전쟁이나 환경의 파괴 등으로 인하여 인류 문명의 몰락이 임박하였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중세와 현대 사이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학문의 발전이 인간에게 무한한 번영을 약속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했던 근대가 자리하고 있다. 탈근대를 부르짖은 포스트 모던의 시대는 더 이상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에 더하여 인간의 이성에 내재한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근대 과학과 산업의 폭발적인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 필멸의 존재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로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던 시점에 갑자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하게 되었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전지구적인 재앙의 규모로 커지고 있다. 사회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경제가 침몰하고 국경은 봉쇄되고 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재앙은  세상의 지배자로서의 인간의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에 도취하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러한 우연적인 자연의 변화가 가져온 재난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인 장정일은 <물에 잠기다>라는 시에서 인류 문명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정복하였다고 믿고 있는 자연의 의지에 의해 소멸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문명은 사라질 것이다
  쿵쾅거리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리 없는 침략에 의해,
  인간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의지에 의해
  문명은 일소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는 그 이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과 삶에 대한 생각 자체를 변화시켰다.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사라진 세상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지만 그 이전의 생활에 대한 반성을 일으켰다.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경북대병원 코로나19 선별진료소(2020.2.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재앙에 대한 대응을 위하여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통제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개인의 건강이 얼마나 다른 지구인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는 집단의 건강을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빼앗겨야 한다는 결과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건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잘못된 딜레마에 빠졌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염병의 확산을 위하여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모든 정보를 국가가 소유하고 이를 관리하는 체제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도한 사생활의 통제 없이도 잘 대처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정부의 진실성과 관리능력을 신뢰하고 있고, 또한 국민들도 정부의 권유에 맞춰 자발적으로 생활을 잘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에 대한 각 나라의 대응을 논하면서 “자발적이고 정보를 잘 습득한 국민들은 경찰에 의해 통제되고 무지한 국민들보다 훨씬 강하고 효율적”이다고 말하였다.

 국가에 큰 재앙이 닥친 경우에 그 국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반민주적인 독재 정권에 굴복하는 경우를 역사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도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투명성’과 ‘자발성’을 통하여 민주주의 제도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없이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은 전 세계에 큰 모범이 되는 듯하다.

 이것은 가짜뉴스에 현혹되거나 ‘쉬운 대답’을 제시하는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지적인 성실함을 갖추고, 집단과 이웃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의 단기적인 욕구를 자제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코로나19를 통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 많은 민주주의’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이재동 칼럼 7]
이재동 / 변호사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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