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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정대협, 용서 못해...일본, 천년만년 사죄·배상해야"

기사승인 2020.05.25  18: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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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 발언 전문] "정대협이 위안부 이용, 벌 받아야...윤미향, 내게 용서 구하지 말아야"
"정신대와 위안부는 달라...수요집회, 방식을 '한일 교육'으로 바꾸자는거지 끝내자는 것 아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92.대구 달서구) 할머니의 두번째 기자회견이 25일 열렸다.

기자회견에 올 것으로 예상됐던 윤미향(55)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불참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측도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2020.5.25.호텔인터불고)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5일 오후 2시 30분쯤 이 할머니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호텔인터불고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7일 첫번째 기자회견에 이어 18일만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에 대한 추가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추측성 보도들이 나왔지만 앞서 1차 기자회견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과 윤 당선인, '정의거억연대(정의연)'과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을 둘러싼 지난 18일 동안의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 할머니는 "어느 날 저녁 내게 와서 (윤 당선인) 무릎을 꿇고 용서를 해달라고 하는데 내가 뭘 용서하겠냐"며 "내가 용서할 건 없지 않냐"고 말했다. 지난 19일 밤 대구 중구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에 대한 입장이다.

이어 "무슨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30년 세월을 보냈는데 인연이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안아줬고 그러다보니 눈물이 왈칵났다"며 "자기 마음대로 30년 운동을 같이 했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내팽개치고 국회로 갔는데 내게 용서도 책임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2020.5.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이날 기자회견에는 취재진 100여명이 몰렸다(2020.5.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면서 "정대협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한다"면서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검찰청에서 다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모금과 관련해 이 할머니는 "1992년 정대협에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할 적에 무슨 교회에 가서 농구선수들이 오는데 모금을 하는 걸 봤다"며 "좀 부끄러웠다. 무슨 돈인지 몰랐고 그렇게 30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대협은 공장에 다녀온 일제 피해자인데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라며 "왜 위안부 피해자를 정대협에서 다루느냐. 위안부는 생명을 걸고 끌려간 사람인데 이렇게 섞어놓으니 일본 사람들이 무엇을 배상할지 말지를 모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지은 정대협 박물관 관련해서는 "나를 대표라고 하길래 그런 소리하지 마라 창피하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대표 대우도 안해줬다"면서 "몸도 안좋은 할머니들은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증언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이용만 당한 셈"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의연 주최 '수요집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앞서 말한 것에 대해서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이야기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 운동을) 끝내자는 건 아니다"면서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지만 학생들이 이어받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가르쳐 한국이 거짓말한다는 말이 없게 해야 한다. 서로 친하게 왕래하면 세월이 가도 바로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 사항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할머니는 "일본과 아베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올바로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쳐서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반드시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휠체어를 타고 기자회견장을 나가는 이용수 할머니(2020.5.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취재진 질문은 5개로 제한해 받았다.

불참한 윤 당선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당당한 것 같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윤 당선인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제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윤 당선인이 할머니들에게 일본 돈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냐는 질문에는 "누가 받았고 말았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정의연에 다른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한 적이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저는 모른다"고 했다.

왜 이제서야 문제 제기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는 "정대협 있는 할머니만 돕고, 나눔의집 피해자만 돕고 그런 걸 보면서 이건 틀렸다고 생각했다"며 "전국에 할머니들을 도우라고 있는 곳(정의연)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하루 아침에 하기 싫다고 배신당했다. 이걸 그만두고 국회의원을 하면서 사리사욕을 챙기는 걸 보면서 이걸(기자회견) 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할머니는 "이 문제는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인 일"이라며 "조상님들이 다 끌려갔고, 대한민국의 형제자매 이런 사람들이 다 끌려간 일이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아서 다시는 강제 연행이 없도록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내·외신 등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장소를 2번이나 변경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발언 [전문]
- 2020년 5월 25일 오후, 대구 호텔인터불고

* 이용수 할머니 발언

(어떤 종이 듬) 제가 이걸 읽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것을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1부 밖에 없는데요. 제가 기자회견 두번째로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처음 할 때 했고, 한데 많이 생각도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 하는거는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 다녀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실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 다녀온 할머니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곳이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간 곳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그 때에 성은 갈지 않으면 배급 안줘. 그래서 성을 야스하라로 갈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4학만 다녔습니다. 그래서 카타카나를 알았습니다. 거기 끌려 가서도 대만 카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카타카나로 이렇게 써서 대화했습니다. 피해자라는 이야기 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적어주는 걸 봤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나도 도시코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적어줘서 그것은 무엇이냐.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후에 겪으면서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합니다.

제가 쭈욱 30년 동안 해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 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2년도 6월 25일에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였습니다. 간사한테 했습니다. 25일 했는데 29일날 모임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였습니다.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천엔인가? 줬다 그러면서 100만원씩 줬습니다. 무슨 돈인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하는 걸 저는 봤습니다. 왜 모금하는지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기다리더라. 기다리는데 그 농구선수가 이렇게 들고 모금을 들고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오더라.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좀 부끄러웠다. 이기려고 애쓰는데 버젓이 앉아서 돈을 걷은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배가 고픈데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니까 돈을 거둬갔으면서 돈 없다고 해. 그때는 그런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어디가도 교회가도 또 돈을 주면 그런갑다 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죽 30년을 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다녀온할머니로 해야 하는데 , 공장 다녀온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해서 만두 빚어놓고 맛있고 귀한 걸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 속은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것을 해도 주욱 30년 해도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젓께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뭐 때문에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위안부를 왜 저거가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해서 주욱 이용해 나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제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한 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뒤집어 섞어서 사죄도 하지 말고 안해도 된다는 것 아닌가. 이걸 30년간 해놓고 사죄 배상 요구하고 그 학생들 까지 고생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서 나온 돈 챙겼다. 이래서 어제 잠도 못잤습니다. 왜 못 때문에 정신대대책위원회, 정신대 문제만 하지 저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다가 일어나서 울컥 울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면서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되겠다. 저희가 사죄배상요구한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고 죽은 이도 많습니다. 그런데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에서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이 바보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왜 위안부 문제 해결하나. 해당하지도 않는데 뭣하러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이냐, 사진 1장만 걸고 했는데 이것은 할머니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 팔았습니다. 팔아 먹은 것입니다. 내가 왜 팔려야 합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들 하나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엄마가 참외를 감춰서 수야 이리온나 해서 종지에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 귀한 딸 고명 딸을 밤에 끌고가서 카미카제 부대에 가서, 방 안들어간다고 끌고가서 (눈물...) 전기 고문과 몸을 칼로 그려서 죽여 놨습니다. 군인이 와서는 그냥 머리를 질질질질 끌고 가서 광 안에 자물쇠 큰 게 달렸습니다. 문을 확 열더니 또 이렇게해서는 발로 그것은 돌덩이보다 더 여문 군화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가지고 엎어졌는데 너무 너무 배가 찢어지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런데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머리를 깔쥐뜯고 앉혀가지고 두 팔을 한 쪽 팔 이래 놓고, 테이블 있는데 여기에 하나 감고 여기에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납니다. 그 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부른 소리가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면 이걸 밝혀줘야 안됩니까.  할머니 어디 다녀왔느냐. 그런데 한 번도 증언 한 번 받은 적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밥 먹고 책 읽고. 93년도부터 책을 놓고 6500원에 파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챙긴 걸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갑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대책협의회 박물관 짓는 서대문형무소에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박경림씨 하고 저희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이러면 박물관에든지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라는 소리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 안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될 거 아닙니까.

하지만 끝까지 3월 30일에 제가 전화했습니다. 미향씨. 이러면 안되자나, 한 번 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자회견 하겠다고 했는데 아주 당당하게 큰 소리로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에 기자회견했습니다.

이런 등등을 하나 하나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와있을 겁니다. 소위 그 국회의원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해야한다는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구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 들어오니까, 막 있는데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라서 넘어갈 뻔 했습니다.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를 합니까? 뭐를 가져와야 용서를 하지요. 하든가 안하든가 하죠. 뭘 용서? 엄청나더구나, 그건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 할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은 안했습니다. 뻔뻔시리 차에 내려서 휠체 타려고 하니까 뭣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시럽기 짝이 없어요.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오도록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해서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그 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 있더라구요.

거기서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30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사람입니다. 30년 같이 했으니 원수도 아니고 하니까 이게 마지막 생각하니 너무 (기침) 너무...눈물이 왈칵나서 제가 안고 울었는데,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갖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건 확실하고 명백히 다 여러분 책임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하려고 했는데,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을 같이 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습니다. 저만 그랬는거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 분들도 다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했습니다. 이래 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 챙겨서 맘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까 거거는 자기 마음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거지, 저한테 책임을, 물을 필요도 없고, 뭐 때문에 용서를 구합니까. 그거 아니라도 여러 수십 만가지를...제가 다 말씀을 못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뙈살이 받았습니다. 그 돈은 내 살을 받아 먹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무엇을 용서를 바랍니까.

해서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 다는 것이지 끝내는 것은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이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도 이야기 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뭐 때문에 사죄 배상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그래놓고는 한국이 거짓말 한다 그 학생들에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세월이 오래갑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합니다. 너거 한국이 왜 배상하고 사죄하라고 하냐. 뭐 때문에. 이야기 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을까. 하면 그게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하니까. 그러면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세월이 가더라도 친해져서 할말도 있고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압니다.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밖에 할 게 없습니다.

또 대구에 역사관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했습니다. 대구에 누가했나. 대구에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에도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 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 받지 않느냐. 돈을 많이 내고 하니까.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것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그게 김복동 할머니 돈이냐. 어느날 미국 가는데 윤미향이 모금했다. 6백만원했는데 저에게 하는 말이 전화와서 할머니 전재산 아니라고 해요. 제가 모금한다고 했나 간다고 했나. 등등 많다. 그런데도 저는 30년간 할머니들 팔아서 했으니 ...왜 이것도 부정아니냐. 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사죄 무슨 사죄이냐. 김복동 할머니요? 왜 김복동만 했노 하니 그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이다. 그 할머니를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녔습니다. 있을 때 잘하고 할머니 있을 때 잘하고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래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 가서 눈물 흘려요? 가짜 눈물입니다. 그것도 죕니다.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끝까지 제가 나이가 들었다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배상하는 것을 천년이 가도 만년이가도 반드시 일본이 해야 합니다. 이런 걸 위해서 양국간에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억울하고 누명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늦게까지 살아 있는게 죄인가.(눈물)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에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습니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스니다.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합니다. 저는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세계의 여성들에게 피해 끼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여성이라는 그 두글자가 너무 미안해서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 할까 했는데...모든 여성들에게 미안합니다.

마지막 말 할 것은 교육을 제가 확실히 두 나라가 왕래하고 알아서 친해져서 이 억울하고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성노예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위안부 문제. 이렇게 팔아가면서...미국 들으라고? 안산도 쉼터 지어놓고 화려하게 지어놨습니다. 그 윤미향이 대표 위대한 대표, 그 아버지 거기에 사셨다고 하더라구요. 엄청나게 나왔는데 다 검찰청에서 밝힐 것입니다. 니 죄를 모르고 아직도 큰소리 하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이 죄를 물어서 죄를 살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마음이 풀리는 것 아닙니다. 고쳐야하죠. 두번 다시 없어야 하고 그러면 그 사람들 벌 받아야 합니다.

장소가 좁습디다. 다 오셔서 안가시도록 하도록 하기 위해 제가 장소 바꿨습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써주세요. 추측해서 없는 말 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저를 욕 보이는 말입니다. 기자 여러분들 이것을 다 옳은 말로 기사 주세요. 저 지금 죽겠습니다. 좁은데서 하면 안되겠다 하는 생각에 코로나도 터졌다고 하는데...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 질의응답*

- 윤미향 당선자에게 오라고 하셨는데 지금 안왔다. 마음이 어떠신지, 앞으로 윤 당선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 기자회견 한다고 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그 사람은 자기가 당당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 합니다.

- 윤미향 당선인이 지금 국회의원 사퇴하길 바라는지?
= 그것은 제가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까 사퇴하든지 말든지 저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 2015년 위안부 합의, 윤미향씨가 다른 할머니들에게 일본쪽 돈 받지 말라고 했다는데?
= 2015년에 돈이 나온지 만지는 그것은 저에게 비밀로 했습니다. 그건 저는 몰라요. 그 후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윤병세 편지 가지고 화해와치유의재단에 대표가 남자 두명하고 왔습니다. 그게 가지고 온게 1월 29일 날짜에요. 저는 받으라 말라 한 소리 한 적 없습니다. 국민기금이든 뭐든 저는 전부 반대했습니다. 그건 누가 받았는지 말았는지 모릅니다.

- 정의연 모금 돈 구체적인 사례 궁금하다. 다른 경제적인 도움 요청했는데 거절당한 사례있는지?
= 해외 다니면서....돈 거둔 것 저는 전혀 모릅니다. 모릅니다.

- 이제야 문제 제기 한 이유는? 윤미향 참석하라고 했는데 만약 했다면 어떤 말씀할 예정이었는지?
= 30년 참은 것은 제가 이 데모 등 하지 마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 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이든지 바른 말 하니까 저를 감췄습니다. 한번도 이야기 한 적 없습니다. 왜 10억엔 왔을 때도 돌려 보냈을 것이기 때문입다. 자기들 말고 자기가 정대협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입니다. 나눔의집만 피해자입니다. 도대체 이런말 하면...틀렸습니다. 전국에 할머니들 도우라고 했는데, 전혀 저에게도 그런 이야기 한 적 없고 비밀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데모도 그만두고 뭐 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랬는데 제가 1년 전부터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30년 하고도 하루 아침에 배신했습니다. 이 배신당한 저가 너무 너무 분했습니다. 다른 건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루 아침에 하기 싫다고 이걸 그만두고 국회의원해서 사리사욕 챙깁니까. 안되는 일입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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