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공단 대기업 A공장의 한 30대 남성 노동자는 열달간 1개월짜리 근로계약서만 10번 썼다.
처음 계약 당시에는 6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다가 그 다음엔 3개월짜리 계약서를 썼고 어느 날 갑자기 계약 기간이 더 줄어 1개월짜리 초단기 기간제 근로계약서를 쓰게 됐다. 매달 월말만 되면 그는 피가 마른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업에 대한 패널티가 적용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노했다.
60세 이상의 구미 한 마을 고령 노동자들은 1년 고용 만기를 채우기 직전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12개월 1년이 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11개월이 됐을 때 사직서를 내게 만든 것이다. 이 제조업 공장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사장은 정부로부터 고용안정을 인정받아 표창장도 받았다.
C대기업 구내식당 60대 여성 노동자들은 최근 일감이 없으니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D다국적기업 스포츠 매장에서 10년간 일한 노동자는 10년째 아르바이트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아이스크림 E매장은 주 15시간을 고용하면 주휴수당을 줘야하니 주 14시간 계약만 갱신하고 있다.
당초 오는 7월 20일까지 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분석 결과를 8월쯤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달 말쯤 조사를 끝내고 발표도 앞당겨 할 것으로 보인다.
실태조사 중간 결과, 예상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들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법정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받았고, 1년짜리 심지어 6개월·3개월·1개월짜리 근로계약서도 많았다. 본인이 비정규직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다행히 4대보험 가입률은 예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고용형태와 급여지불 방식에 대한 꼼수와 차별은 여전했다. 조사를 진행한 관계자들도 놀란 사례가 많았다. 10~30년 노동운동을 한 이들도 "듣도 보도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차헌호 구미노동인권네트워크 상임대표는 "현장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초단기계약을 쓰면서도 비정규직인지 모르거나, 차별을 받아도 차별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아서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또 "구미공단이 생긴 뒤 51년 만에 첫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진행돼 너무 늦은감이 있다"면서 "이제라도 제대로된 조사를 펼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꼼수, 차별, 갑질까지. 너무 많은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사례에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바닥을 향한 질주가 일반화됐다. 구미를 시작으로 대구경북 다른지역에서도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펼쳐 현장의 불합리한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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