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남편 회사가 문을 닫는다

기사승인 2020.07.09  11:25:18

공유
default_news_ad1

- 정은정 (한국게이츠 노동자 가족)
30년 흑자기업이 생산공장은 폐쇄하고 영업법인만 남긴다는데...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는다. 지난 6월 26일 여느 날과 같이 출근한 남편에게서 11시가 되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7월말에 폐업한다카네.”라고 말했다.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뭐? 폐업? 폐업한다고?”하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응 폐업한다고 아침에 발표했다.”고 다시 확인해주었다. 실감나지 않는 말이었다. 폐업. 남편은 내년 1월이면 20년 근속자가 된다. 회사에서 15년 근속한 직원에게 2박 3일간의 유급휴가와 여행경비를 지급해주는데 우리는 그 여행을 가지 못했다. 내년이면 20년 되는데 올해에는 15년 여행을 갔다 와야 되지않느냐 하다가 급할 거 뭐 있겠나며 있다가 좋을 때 가자고 했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논공 공단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현대기아차 1차 협력업체인 한국게이츠(주)이다.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쳐 1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세계 30여 개국에 100개 이상의 공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게이츠의 한국 생산공장이다. 1989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30여 년간 거의 매년 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다. 2017년~2019년 3년동안에도 매출은 약 1,000억 원대, 순이익은 50억 원대였다. 그런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사업을 철수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 예상되어서라는 이유로.

 
 
▲ 한국게이츠 최근 3년간 매출, 순이익 지표 / 자료 제공. 금속노조 대구지부

회사는 사전에 어떤 예고나 협의 없이 6월 26일 당일에 “제조 시설 폐쇄에 대한 한국게이츠의 입장”이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노조에 폐업을 통보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게이츠유니타코리아(주)라는 판매 법인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생산 공장은 폐쇄하고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부품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돈벌이는 계속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내다 붙인 공고문의 마지막 문장은 “당사는 향후 이번 결정으로 영향을 받게 될 직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지원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퇴직 및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던 회사가 지금까지 제시한 것은 “희망퇴직공고” 뿐이다. 7월 말에 회사 문을 닫겠다면서 직원들에게 7월 20일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해야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스스로 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위로금조차 지급하지 않겠다고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 한국게이츠 제조 시설 폐쇄 입장문(2020.6.26) / 사진 제공.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이러면서 직원 존중이나 업계 모범 사례를 운운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는 그래도 되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한국에서는, 여기 대구에서는 언제나 기업이 우선이니깐, 기업하기 좋은 게 최고의 가치니까. 법과 제도도 기업의 이윤추구를 최우선 보장하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먼저 돌보지 않으니까, 글로벌 기업은 여기가 그런 곳이라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폐업 발표 후 2주일이 흘러가고 있지만 노동청이든 대구시든 정치권이든 누구도 먼저 노동자들을 찾아와서 상황이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물어오지 않는다. 이미 지역 여러 언론에 한국게이츠 폐업 소식이 보도되었으니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시민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 살피고 지원방안을 찾는 것이 정부와 자치단체, 정치권의 할 일텐데 어떻게 이렇게 꼼짝하지 않는 것일까? 노동문제는 피하는게 상책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현대기아차의 입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견실한 국내 생산 공장을 강제로 폐업하고 중국에서 제조해서 납품하는 부품을 선뜻 받아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국내 대기업으로서 국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가장 우선 과제를 일자리 지키기로 삼고 기업의 고용유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시도 지역 실정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시정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정부와 대구시가 국민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에 얼마나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은 한국게이츠 폐업 사태 해결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 "코로나 핑계 폐업, 해고 규탄" 대구 한국게이츠 앞 기자회견(2020.6.30) / 사진 제공.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백번 양보해 회사가 주장하는 폐업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 하자. 그것이 타당한 것이라면 회사는 직원들을 납득시키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폐업이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폐업을 철회하고 공장을 정상화하라고 노동조합의 요구와 자존심과 생계를 지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바램은 정당하다.

상충되는 서로의 입장과 요구가 있으면 이를 두고 합의에 이를 때까지 조율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이렇게 중대한 문제는 어느 일방의 입장만 관철되어서는 안된다. 또 이 과정을 이해가 상충하는 노사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정부와 대구시, 지역 정치권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위에 있는 기업의 이해만이 일방적으로 관철된다면 노동자들도 격렬하게 저항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경험했다.

남편은 20여 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낸 일터, 가족의 생계를 맡겼던 직장에 원망하는 마음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작은 바램조차 이루기 어려운 것 같다. 회사는 평균 2년치 정도의 임금을 위로금을 내세우며 직원들을 조롱하고 분열시키고 있다.

기업이 이윤을 쫓아 하루 아침에 멀쩡한 제조 공장의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려도 이 국가의 법과 제도는 아무런 재제를 할 수 없다고 하니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당장 법과 제도를 새로 만들 수 없다면 정부와 대구시의 행정력과 정치권의 노력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나라이고, 정치이다.
 
20여 년 전 남편은 갓 첫 아이를 얻은 젊은 아빠였다. 매일 아침 8시 공장으로 나가 노동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고 아이들을 이렇게 키웠다. 남편과 동료 노동자들의 땀흘려 노동한 긴 시간이 최소한으로라도 존중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고]
정은정 / 한국게이츠 노동자 가족

평화뉴스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51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ad40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