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찾은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적십자병원 땅에선 철거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대부분이 헐려 앙상한 철골 구조만 남았다. 지난 1945년 '대구적십자진료소'로 문을 열어 대구지역에서 취약계층들을 진료해왔던 대구적십자병원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과 맞물려 대구적십자병원이 남아있었다면 지역에서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지역 보건·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4.15총선 당시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이 염원을 받아 제2의 대구적십자병원이나 제2의 대구의료원 건립 등의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구적십병원은 사라지고 있다. 그 땅에는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설 참이다.
대구적십자병원에는 인근의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등 취약계층들이 자주 찾았다. 2005년부터는 한 주마다 건물 1층을 통째로 취약계층을 위한 무료 진료소로 운영하기도 했었다. 대구지역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매주 이곳을 찾아 의료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진료소를 열 때마다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비롯해 탈북자, 성매매 피해 여성, 가출 청소년, 베트남, 네팔, 태국 등 이주노동자들도 병원을 찾아 붐비는 일이 많았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했던 대구적십자병원 폐원에 대해 당시 지역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대구시와 대한적십자사에 재개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끝내 병원은 다시 문을 열지 못하게 됐다. 보건·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제2의 대구적십자병원 같은 공공의료기관 증설을 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2005년 대구적십자병원 무료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난 10일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는 3만8,000여병상의 '메디시티'를 자부하고 있지만 올해 3월 초에는 2,300여명의 코로나 확진환자들을 입원시킬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집에서 대기하는 일도 벌어졌었다"며 "최소 500개 병상을 가진 제2의 대구의료원을 건립해 코로나 재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코로나가 극심할 당시 전국 공공병원이 전초기지가 돼 확진자70% 이상을 소화했다"며 "공공병원 역할이 확인된 만큼 대구시도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대구의 지방의료원은 대구의료원 1곳 뿐이다. 대구 종합병원 이상 공공의료기관은 대구의료원을 포함해 경북대학교병원, 칠곡경북대학교병원, 대구보훈병원 등 4곳이지만 대구보훈병원은 보훈대상자 진료가 주 목적이고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2곳도 코로나 사태와 같은 팬데믹(전염병의 전세계적 유행)에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의료인력을 동원키 어렵다는 게 지역 의료계 설명이다.
공공의료기관은 정부나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곳이다. 지방의료원·국립대학병원·보훈병원·근로복지공단병원·적십자병원 등이 공공의료기관에 해당한다. 이 중 지방의료원은 지자체가 설립하는 병원이다.
지자체 단위뿐 아니라 국내 전체로 봐도 한국 공공의료기관 수는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든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공공병상 개수 통계(beds in publicly owned hospitals)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인구 1천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23개로 28개국 중 26위에 그쳤다. 1위 리투아니아(6.64개)와 5배, 9위 일본(3.56개)과 3배 차이다. 27위는 멕시코(0.73개), 28위는 미국(0.61개)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의료원 증설 계획이 아직 없다. 김재동 대구시 보건복지국장은 "증설 예정은 없다"며 "대구시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이 많기 때문에 신설보다는 대구의료원 기능을 보강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민간 협력, 대구의료원 기능 확대를 통해 코로나 2차 유행에 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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