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불매(不買)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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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이 엄중한 상황에서 파업...일부 의료인들의 집단이기주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달라는 제자들에게 남긴 부탁이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나, 당시 병이 나으면 의술(醫術)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에 닭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고, 소크라테스가 임박한 죽음을 병에서 치유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는 말이 유력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의사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정치가로 불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깨끗이 나을 수 있는 병은 고쳤지만 독을 주입하여 비참한 생활을 연장하는 치료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술의 목표는 ‘좋은 삶’이 되어야 하고, ‘좋은 삶’과 충돌하는 순간부터 의술은 오히려 해로운 것이 되며, ‘좋은 삶’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가가 하여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이는 의술이 보잘 것 없던 옛날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근대 이후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고 특히 병균에 의한 질병을 예방하여 때 이른 사망을 줄인 것은 모두 의학의 발전 덕분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 전문 의료인 계층의 발생과 함께 화학약품과 고가의 의료기계 등의 개발에 따른 거대한 의료산업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의료산업의 가속적인 팽창은 그 나름의 논리와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한 생활을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존재근거마저도 무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기업화된 의료산업은 나름의 이윤논리로 작동하고 있으며, 의료인들은 의료에 관한 지식을 독점한 동업자조합의 일원으로서의 경제적 이익과 명예의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새로운 검진기계의 발명은 과거에 없던 질병을 만들어 내어 종래의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분류한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다면 그에 맞는 질병이 역시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료의 목적이 건강하고 좋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이라는 개념이 최신 의료에 맞게 조절되는 가치의 전도(顚倒)가 일어난 것이다.

 최근에 미국의 노인전문의사인 루이즈 애런슨이 쓴 <나이듦에 관하여, Elderhood>란 책을 읽었다. 노년의 초입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늙음과 죽음에 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었다. 저자는 사람 특히 노인에 대한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의문을 던지는데, 환자의 개별성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여 최신 기술과 화학약품을 무분별하게 적용한 질병의 치료에만 몰두하여 오히려 환자의 삶의 마지막을 망치고 마는 현대 의학에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의학 교육은 의사들의 환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말려 버리고, 세뇌로 상식적 사고력까지 박탈하여 살아 있는 기계로 만든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하고 있다.

<경향신문> 2020년 8월 26일자 9면(종합)
<경향신문> 2020년 8월 26일자 9면(종합)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산업의 팽창과 함께 수명의 연장과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하여 의료비 지출이 최근 5년 사이에 50조 원이 증가하였다는 통계도 있고,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현재 의사의 수가 13만명 정도라고 하는데, 의과대학의 정원을 10년간 매년 400명 늘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관하여 이 엄중한 상황에서 파업으로 맞서는 일부 의료인들의 태도는 집단이기주의로 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의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도구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결정권은 과학기술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말과 같이 정치에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좋은 삶’을 규정하는 것은 의료인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이나 인문학의 영역이며 국가의 의료정책의 목적은 국민의 삶과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이지 마지막 의사 하나까지도 풍요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느 복지에 관한 강연에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개인당 의료비 지출이 5배에 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수한 건강보험의 혜택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자신의 건강을 너무 많이 병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사소한 질병은 면역력으로 스스로 치유되게 하는 북유럽식 건강법이 태어날 때부터 병원을 들락거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보장한다.

 사실 완벽한 건강은 하나의 환상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생로병사의 필연적인 과정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 속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욕망을 절제하는 생활습관과 이웃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 건강하고 좋은 삶이다. 이를 위하여 자신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너무 많이 의료인과 의료산업에 넘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재동 칼럼 10]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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