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에 갇혀 논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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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윤희숙 의원과 하이에크 사례


사회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같은 문제도 세계관・가치관에 따라 해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토론식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2대 수칙을 강조한다. 주장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아울러 예상 반론도 논리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런 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진영에 갇혀 수시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정계, 언론계만이 아니라 학계에서조차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윤희숙 의원: 임차인 보호를 위해 국가가 임대인에게 보상해야 한다?

우선, 경제학 박사 출신 윤희숙 의원이 '임대차 3법'과 관련하여 7월 30일 국회에서 한 5분 발언을 보기로 한다. 국회는 미래통합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였다. 임차권 보장 기간을 종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을 비판한 윤 의원의 발언이 주목받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래도 학계 출신이므로 논리적인 근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발언문을 읽어보았다.

윤 의원은 임대차시장을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하는 시장"이라고 진단하면서, 임대인의 부담을 늘리게 되면 임대인이 가격을 많이 올리거나 시장에서 나가버리게 되어, 결국 임차인의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려면 국가의 부담으로 임대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주장은 현재의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래야, 한쪽에 유리하도록 규칙을 바꾼다면 불리해지는 쪽을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시장이 기울어져 있다면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하며, 이런 정상화 조치로 인한 과도기적 부작용이 예상된다면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사진 출처 / KBS 뉴스 <통합 윤희숙 "집값 일부러 떨어뜨리는 나라가 어딨나">(인터넷 2020.08.04)
사진 출처 / KBS 뉴스 <통합 윤희숙 "집값 일부러 떨어뜨리는 나라가 어딨나">(인터넷 2020.08.04)

그럼 우리 현실의 시장은 어떤가? 윤 의원은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이렇게 예상한다. 임대인의 부담이 늘어난다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아들이나 딸한테 들어와 살라고 하겠지요. 친척 조카에게 들어와서 관리비만 내고 살라고 할 겁니다. 월세로 돌리던지요." 임대인이 이처럼 손쉽게 임대를 중단한다면 그건 임대인이 강자라는 증거다. 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이 시중 이자율보다 높은 거래 관행 역시 임대인이 강자라는 증거다. 윤 의원이 이런 예상 반론을 제대로 검토했더라면 임대인에게 보상하라고 했을까?

하이에크: 실무적 어려움이 있으면 원칙을 간단히 포기하나?

또 윤 의원보다 훨씬 저명한 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의 예도 들어보자. 하이에크는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한 '자유시장경제' 이념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장에 대한 정보는 시장 참여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어떤 행위도 결과적으로 시장작용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계획경제와 같은 인공적 질서에 반대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하이에크는 '도시계획'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토지를 각 소유자가 알아서 이용하도록 하면 도시 전체 토지의 관점에서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관점의 토지이용 방안, 즉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개별 소유자는 그 계획에 맞춰 토지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도시계획이 존재한다면 개별 토지의 가격은 그 계획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되어,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불로소득을 얻거나 책임 없는 손실을 보게 된다. 하이에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가치를 사회가 징수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19세기 미국의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제안한 '지대세'와 같다.

그런데도 하이에크는 지대세 도입에는 반대하였다. 토지 가치에는 토지의 자연적 형질, 사회적 원인, 개별 소유자의 행위가 영향을 주는데 이들을 실무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토지 가치 중 소유자의 행위로 인한 부분은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원칙이 실무에서 완벽하게 구현되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텐데, 이런 정책을 다 포기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소득세를 예로 들어보자. 소득세의 이론상 과세표준은 수입 중에 그 수입을 얻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인데, 실무에서 수입과 비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소득세를 걷지 말아야 하나? 하이에크가 이런 반론을 예상했다면 실무적 어려움이 원칙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지를 검토했어야 한다. [각주처럼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필자는 아예 토지가치의 원인을 구분할 필요 없이 모두 징수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졸저, 『지공주의』, 경북대학교출판부, 2009, 278~285쪽 참조]

하이에크가 왜 이런 성급한 결론을 냈을까? 논리적으로는 도시계획의 필요성과 지대세의 우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정부 개입을 싫어하는 마음이 작용하여 현실 도입에 반대하는 결론으로 기울고 만 것이 아닐까? 이념적 편향성 혹은 고정관념이 논리를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와 같은 거목마저 이런 함정에 빠졌다는 게 놀랍다.

사회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문제에 대해 편견, 감정, 이해타산을 넘어 이성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적어도 학계에서만이라도 진영에 갇혀 논리가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김윤상 칼럼 95]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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