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낙태죄'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다.
낙태죄는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6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을 발표하여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아무런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 부처 간의 논의 소식을 접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무조정실 면담을 요청했으나 총리 일정과 형평성 문제로 만나기 어렵다고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권고도 무시되었다. 정부는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국무조정실 중심으로만 논의하고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논의과정도 공개하지 않고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것이다. 그간 여성계에서는 낙태죄 전면폐지와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외쳐왔다. 정부의 입법예고안 발표 직후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즉각적으로 '형법상 낙태죄 완전삭제'를 촉구하는 각 지역별, 분야별 입장발표와 기자회견, 시민선언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여성단체에서 많은 '낙태 경험자'와 만난다. 대구여성회에서 지원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임신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이들은 왜 임신을 하게 된 것일까. 자원이 없고, 곤궁한 청소년들은 성착취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원하는 성관계에서도 '피임'을 요구하기 어렵다. 피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성경험이 많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폭력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인공 임신중절 수술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한국의 낙태율은 가임기 여성 1000명당 15.8건으로 조사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인공임신중절 당시의 혼인상태는 미혼 46.9%, 법률혼 37.9%, 사실혼·동거 13.0%, 별거·이혼·사별 2.2%로 기혼 상태를 유추하면 50.9%이니 기혼여성들의 인공임신중단도 종종 있는 일이다. 국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던 시기에는 더 많이 일어났다.
국가와 사회가 고민하고 풀어야할 문제는 인공임신중단을 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며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임신·출산·양육이 인생의 짐이자 경력의 끝, 독박육아의 수렁이 되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또한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여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통제와 처벌이 아니라 권리보장과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이 어떤 결정을 하던 간에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낙태죄'를 완전 폐지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할 일이다.
[남은주 칼럼 14]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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