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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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앞에서


 우리 헌법재판소는 작년 4월에 현행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낙태죄에 관하여 한정위헌판결을 내리고 올해 말까지 처벌조항을 개정하라고 판결하였고,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형법 개정안을 마련하였다. 이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는 자유로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후 24주까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낙태를 제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 사진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쳐(2019.4.11)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 사진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쳐(2019.4.11)

 이런 절충적인 입장의 개정안은 낙태에 관하여 찬반 양 쪽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신성시하는 종교단체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낙태의 허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고 임신부인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여성단체 등에서는 낙태의 전면적인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생명 선호(Pro-Life)’ 주장과 '선택 선호(Pro-Choice)' 논쟁이 재연되는 듯하다.

 우리가 낙태라는 거북스러운 일에 관하여 느끼는 당혹감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작가 공지영은 어느 책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밝히면서 그때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나 역시 낙태의 경험이 있고 나 역시 아직 그때 어렸다. 임신 판정을 받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흘렸던 눈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죄의식 없는 낙태를 나는 반대하지만 죄의식 과잉으로 한 인간을 평생 떨게 만드는 일에도 나는 반대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여자들의 인권이나 사회 제도적 불평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보호받아야 할 법익들이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을 때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먼저 그 이익들의 정당성을 가리고 시대적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여 그 접점을 정하여야 하는 것이 입법자의 책임이다.

 미국에서 낙태를 허용한 기념비적인 판결이면서 지금도 폐기 여부로 신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1973년의 Roe vs. Wade 판결 이래 세계적인 추세는, 낙태의 허용 한도를 태아가 모체로부터 분리되어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으로 보고 그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면서 그 이전의 경우에는 단계에 따라 국가의 규제가 개입할 수 있는 정도를 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임신기간을 3분하여 첫 3분기(12주)의 낙태는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에 속한다고 보아 완전한 자유로 인정하고 있으며, 둘째 3분기(12주-24주) 중의 낙태에 관하여는 주 정부의 입법에 의한 규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낙태죄' 정부 입법예고안 규탄 대구여성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2020.10.12) / 사진 제공. 대구여성회
'낙태죄' 정부 입법예고안 규탄 대구여성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2020.10.12) / 사진 제공. 대구여성회

 유럽의 경우에도 평균 임신 후 12주 정도의 기간 동안에는 자유로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 개정안에서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자유로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그후 24주까지에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허용하고 있지만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한 경우도 그 사유로 들고 있어서 사실상 허용의 폭이 넓다.  

 이러한 개정안에 대하여 여성단체 등에서는 낙태죄의 부활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완전한 낙태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성장하면서 인간의 형태를 갖춤에 따라 국가는 그 보호의 책임을 지고 개입의 정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설시하고 있는 바다.

 어떤 권리도 다른 권리와 충돌할 때에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어느 미국 연방대법관이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서 멈추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도 타인의 생명 앞에서는 적절히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번 개정안은 서로 충돌하는 이익을 선진국의 입법례에 따라 적절히 조정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재동 칼럼 11]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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