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공쳤는데 오늘 또...찬겨울, 하염없는 새벽 인력시장

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 입력 2020.12.1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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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비산동 / 일용직 노동자들의 기다림...북적북적 온기 옛말·발걸음 뜨문...모닥불도 못피워
마스크 끼고 백팩 메고 줄담배..."무작정 기다려도 일감 허탕, 병까지 번지니 원망스럽다"


거리를 채우던 차들과 행인이 자취를 감춘 새벽. 새카만 겨울밤 가로등만이 북비산네거리를 밝히고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이 백팩을 하나씩 맨 채 원고개 시장 앞으로 모여든다. 연말을 향해 가는 12월 11일, 대구시 서구 비산동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 모습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는 그들의 손엔 어김없이 담배와 자판기 커피가 들려있다.

"몸 아프면 우짜노, 그게 더 걱정이지...원망스러운 코로나"

새벽 공기에 서있으니 잠시만 있어도 기자의 마스크가 입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인력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찝찝하지만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있었다. 야외 건설 현장을 다니는 그들에게는 "일상 같은 경험"이라고 했다.

대구 서구 비산동 원대오거리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대구 서구 비산동 원대오거리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중개업자의 연락을 기다리던 목수 기능공 이모씨(64)는 코로나에 대한 질문에 "안 그래도 일감 부족한데 뭔 병이 참내.."라고 씁쓸한 대답을 뱉었다. "자잘한 잔부상은 작업하다가 늘 있는 일이라. 근데 병 걸리뿌가 일 모하면 어야노..."라고 걱정스러운 푸념을 이었다.

오랫동안 일용직 잡부 일을 해온 김모씨(71)는 "일이 고된 건 둘째 치더라도. 갈수록 몸이 버거워지는게 고장이라도 날까봐 걱정"이라며 "현장에서 마스크는 자주 끼는데 일 안 할 때도 마스크 써야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이렇게 병까지 번지니 원망스럽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코로나로 전체 경제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일용노동자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다.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을 찾은 60대 70대 노동자들은 "일도 코로나도 모두 막막한 현실“이라며 바닥에 널린 쓰레기만 끌어 모았다.

"한 달에 열흘 될까 말까...일감 점점 더 없어져"

새벽 4시 30분,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어깨에서 백팩을 내려놓고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30년간 일용직 노동자로 종사했다고 밝힌 박모씨(77)다.

줄담배에 자판기 커피...찬겨울 이른 새벽 인력시장의 풍경(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줄담배에 자판기 커피...찬겨울 이른 새벽 인력시장의 풍경(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박씨는 "오늘 울진에 철근 일이 있어 연락을 받고 일찍 나왔다"고 전하며 "겨울은 건설업의 비수기다. 한 달에 많아야 열흘 일한다"고 담배연기 섞인 긴 한숨을 뿜었다. 박씨는 이어 3월쯤은 돼야 일거리가 좀 있고 3월, 4월이 성수기라고 말했다.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인력시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벤치 앞 상가에 있는 작은 커피자판기로 몰렸다.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온 그들에게 자판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고 했다.  

박씨는 "90년대 북비산 인력시장은 100명 200명 단위였다"며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새 박씨와 같이 울진으로 철근 일을 나가는 권모씨(72)도 도착했다. 권씨는 "옛날에는 모닥불 크게 태우고 그랬어. 지금 공원처럼 다 바뀌면서 모닥불도 못 태우지”라며 아쉬워했다. 이야기를 듣던 한 남자는 "옛날에는 불 못 피우면 인력시장 오지도 못 했어"라며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권씨는 "옛날만큼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며 "대부분 중개업자에게 직접 연락을 받거나 작업반장에게 일감을 받고 인력시장에서 대기하다가 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권씨는 "인력시장에 나와도 워낙 허탕이 많으니 연락 없이 무작정 잘 안 나온다"며 "북적북적 할 때는 사람의 온기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없다"며 쓸쓸하게 말했다.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구해 차량에 올라타는 한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구해 차량에 올라타는 한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그들의 하루 일당은 각종 허드렛일을 맡는 잡부의 경우 11~13만 원 정도를 받고 목수, 철근, 콘크리트, 공구리 등 기능공들은 17~20 등 다양하다. 박씨는 "달에 150 월급생활보다 못 번다"면서 특히나 겨울철의 일감 부족에 대해 걱정했다.

새벽 5시, 일거리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들..."그래도 무엇이든"

새벽 5시가 조금 지날 무렵 박씨와 권씨는 중개업자의 승합차량을 타고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인력시장을 찾았다. 그들은 익숙한 듯 인사를 나누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원고개시장 입구를 서성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남자는 "일 시간이 좀 남았지만 일찍 나와서 커피도 한 잔하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좀 나누려고 한다"고 했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했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남자가 "배운 게 없어서.."라고 운을 띄우니 주변에서 "배운 게 없기는 배우고도 일 안하는 사람 천지다"라고 언성이 높아졌다.

60대 김모씨가 기자에게 자신은 '영세민‘이라고 소개하자 주변에서도 "나도 영세민 신청했는데 안됐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김씨는 어릴 때 가난한 시골집에서 자라 6남매를 책임지기 위해 일찌감치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과 공사판을 돌아나녔다"고 했다.

하염 없이 기다려봐도 일감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리는 이들(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하염 없이 기다려봐도 일감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리는 이들(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30년 가까이 이 일을 했다는 정모씨(70)는 "노가다 이전에 회사도 다녔었다. 배타고 해외도 나가고 했다. 근데 사업실패로 이렇게 됐다"며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인력시장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가 비슷한 처지"라고 했다. 병에 걸린 가족, 자식들의 외면, 가정 불화 등의 고민 속에 북비산네거리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5시 30분쯤 지났을까 작은 빨간 트럭이 문을 연다. 인력시장 옆에 선 트럭 안에는 밝은 조명과 함께 간단한 음료들이 준비돼있다. 인력시장 앞에서 30년 동안 커피와 차 등을 팔아온 유모씨(61)는 "인력시장을 찾는 발길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일거리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500원짜리 율무차를 부탁해 마시는 동안에도 분주하게 인력을 실어 나르는 승합차들이 오고갔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닷새 일 없어...혹시나 했는데"


새벽 6시 무렵, 원고개시장 앞은 일을 기다리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남았다. 중개업자가 일찍 데리러온 사람들은 벌써 4명가량 자리를 뜬 뒤였다. 겨울밤 해가 뜨기 전 북비산 네거리는 급격히 추워졌다. 60대와 70대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겨울 추위는 야속하기만 했다.

새벽 인력시장의 커피 트럭, 인력시장을 찾는 이들의 단골 가게(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벽 인력시장의 커피 트럭, 인력시장을 찾는 이들의 단골 가게(2020.12.11)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대부분 소개 업소에 연락을 받고 나왔지만 연락을 받지 않고 나온 60대 이모씨도 있었다. 큼지막한 백팩을 매고 벤치에 앉은 이씨는 커피를 마시며 "5일 동안 일이 없었다"며 "혹시 오늘은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일거리는 주어지지 않았고 7시가 가까워 오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터덜터덜 멀어졌다.

마지막 노동자를 태운 승합차가 떠나고 추운겨울 북비산 네거리 인력시장을 찾은 15명 남짓의 사람들은 마치 흔적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오전 7시 30분 거리를 뒹굴던 쓰레기들도 미화원의 빗자루에 모두 정리됐다. 담배연기와 한숨이 섞이던 자리에 출근길을 나선 사람들의 발길이 지난다.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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