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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동양·대륙서점...대구시청 옆 헌책방, 사라진 책방골목의 시대

기사승인 2021.01.05  19: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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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후 시청 옆 30여곳→컴퓨터·폰 등장, 발길 뚝...'재개발' 월세 폭등 90% 폐업
평화서적·동양서점 "우리 시대 끝, 나도 곧"...2대째 대륙서점 쫓기듯 정리 "부산처럼 지원 있었다면"


 
 
▲ 대구 중구 동인동 헌책방 골목의 평화서적 사장 김상철씨(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 동안 대륙서점을 이용해 주신 고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0년 가까운 전통의 대륙서점이 문을 내리게 됐습니다. 2대째 서점을 한다는 자부심을 이제 접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대구시 중구 동인동 1가 82. 대구시청 옆 헌책방 골목길 터줏대감격인 대륙서점이 70년의 역사를 정리하며 지난해 손님들에게 띄운 마지막 편지다. 셔터 내린 서점 문에 폐업을 알리는 공지를 걸었다.

 
 
▲ 대구 헌책방 골목 터줏대감 대륙서점이 70년 만에 폐업했다(2019.7.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문을 연 서점을 딸 이성자씨가 2대째 넘겨 받아 운영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오래 골목을 지키며 헌책을 판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쇠락했다. 헌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대구 중구청을 찾아가 지원도 요청해봤지만 "안된다",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중구청은 오래된 골목을 활성화한다며 '공구골목', '방천시장 김광석 골목'에 대해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헌책방 골목은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 중구청이 '보수동 헌책방 골목길'을 문화자산으로 지정하고 기반시설과 운영에 대해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과 대비된다.   

 
 
▲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진 대륙서점(2019.7.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성자씨는 "재개발로 서점이 사라지기 전 중구청에 가봤지만 지원할 수 없다는 말만 했다"며 "골목길을 살린다면서 오히려 오래된 서점들은 문 닫게 하고 땅값만 올려 골목길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골목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부산처럼 지원이 있었다면 나도 계속 했을 것이다. 대형 중고서점까지 들어온 마당에...대구의 헌책방 골목은 결국 경쟁력이 사라져 도태할 지 모르겠다"고 지난 달 31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밝혔다.

한국전쟁 후 70여년간 대구시청 옆을 지킨 오래된 헌책방 골목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장으로 헌책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알라딘 중고서점과 예스24 중고서점 등 대형 기업들도 지역에 중고서점을 문을 열어 하루 종일 헌책방 문을 열어도 찾는 이 하나 없다. 최근에는 대구시와 중구청이 '재개발 사업', '도시재생 사업'을 하면서 주변 땅값이 치솟아 월세까지 덩달아 폭등해 적자도 심각하다. 대구시청 옆 네거리와 지하도(일명 굴다리)~공평로 네거리까지 한때 30여곳에 이를 정도로 성업했던 헌책방은 현재 90%가 문을 닫은 상태다.

 
 
▲ 헌책방이 거의 사라졌지만 40년째 장사 중인 평화서적(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동양서점도 88올림픽 즈음 문 열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청 옆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헌책방은 불과 2~3곳이다. 대를 이어 헌책을 팔아온 오랜 역사의 헌책방도 지난해 애틋한 편지 한 장만 남기고 70년 만에 쫓기듯 정리했다. 40년 가까이 골목길을 지킨 80대 노(老)사장님들도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과 달리 헌책방은 정물화처럼 시대를 지켜왔지만, 손 닿으면 찢어지고 부식될 고서적처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외면받고 있다.

2020년 마지막 날인 지난 달 31일 대구시 중구 동인동 1가 17-1 동양서점과 그 바로 옆 평화서적. 난로 앞에 80대 어르신들이 서점을 지키고 있었다. 간판은 다르지만 겉모습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 평화서적 사장님이 뉴스를 틀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빈 틈 없이 책장에 꽂힌 헌책들, 책을 읽고 있는 손님(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색 바랜 1980년대 하이틴 잡지에 두꺼운 영어·사전·국어사전, 바둑 입문 책, 세트로 묶인 백과사전, 해방 전후 시집, 읽기도 어려운 깨알 글씨로 적힌 한자 소설까지. 문 앞에 헌책이 즐비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헌책 냄새가 밀려온다. 빽빽한 활자처럼 틈 없이 꽂힌 책들이 어지럽다. 찢어진 바닥, 금이 간 천장에도 무질서하게 꽂혔다. 사다리를 타야 볼 수 있는 책도 있다. '만지지 마시요' 노끈에 묶인 책 위에 경고가 붙었다. 손님들이 사가지 않고 읽기만 해서 종이가 맨질하게 닳아버리자 붙여놨다.

 
 
▲ 찾는 이 없는 오래된 낡은 잡지와 책들이 헌책방 앞에 놓였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손대지 마시오' 헌책에 붙여 놓은 경고 문구(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운동, 바둑...평화서적 사장님이 종류별로 종이를 붙여놨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0여년째 평화서적을 운영하는 80대 김상철씨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장사를 시작했는지 물어도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전 내내 문을 열어도 찾아온 손님은 1명. 책을 좀 읽다가 사지 않고 나가바렸다. 김씨는 손님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고 잡지도 않았다.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만 하염 없이 볼 뿐이다. 손님이 많으면 하루 10명. 하루 종일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무수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있던 손님마저 더 줄었다.

김씨는 "월 90만원 벌어도 절반 넘게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자꾸 문 닫고 없어지고 있어. 우리 시대는 끝이야"라고 했다. 그러면서 "옆 집(동양서점)이랑 누가 먼저 문 닫나 하고 있다"면서 "아직 재개발이 없어서 하는 거지 한 1~2년 하다가 나도 곧 닫아야지. 미련도 없어"라고 말했다.

 
 
▲ 동양서점 사장 이원호씨가 난로 옆 의자에서 밖을 본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양서점 사장 이원호(82)씨는 지난 1987년 서울 88올림픽 즈음 책방을 시작한 헌책방 2세대다. 대구지역 헌책방 1세대들은 이제는 사라진 한국전쟁 전후 세대로 대륙서점과 신라서점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1세대들에게서 일을 배웠다. 당시 고물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파는 이른바 '나카마(なかま.고물상)'들이 많았고 거기에 제법 돈이 되는 고서적이 많았다. 이씨는 그걸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최근에는 70년 전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권당 몇 십만원 주고 팔았다. 소장 가치가 있으니 종종 찾는 이들이 있다. 일제시대 서적, 해방전후 시집도 비싼 값에 팔린다. 초판 '재태크' 용으로 사간다는 거다.

 
 
▲ 팔리지 않는 옛 사전들이 빽빽히 동양서점 책장에 꽃혔다(2020.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럼에도 헌책방은 잘 되지 않는다. 하루 3만원 벌면 많이 벌었다. 잘 될 때와 비교하면 매출은 70%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 100만원 월 매출은 더 떨어져 절반도 안된다. 지도, 사전, 전과 뭐든지 책으로 지식을 쌓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기술 발달로 책 읽는 이가 감소한 탓이다. 헌책은 말할 것 없다.

그는 "아기들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만하면 다 나오는데 헌책이 설 자리게 있겠냐"며 "우리 같은 사람이야 빼도 박도 못하니 하지 젊은이들은 헌책방을 하지 않는다. 손님도 다 50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씨는 계속 헌책을 사들이고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읽히길 바라며 오늘도 책장을 채운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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