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이라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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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칼럼] 노동에 싼 값을 매기고 존재마저 값싸게 훼손한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말 경기 수원의 한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쿠키)을 발 위에 올리면서 장난치고 그 장면을 쇼셜 미디어(SNS)에 실시간 방송까지 했다. 이 영상이 퍼져나가 백화점 이용 고객들과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백화점 측은 사과 문을 내고 VIP 라운지를 이용하는 직원들에게 고객들에게는 사과문자까지 보내고 라운지를 일시 폐쇄하고 과자를 전부 폐기하는 등 조처를 취했다.

이 사건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고, 나도 한 방송국의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건·사고 중 하나로 지나칠 수 있었던 뉴스에 마음이 붙잡힌 건 “백화점 측은 외부 업체 직원들이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 영상을 찍었고 문제가 되자 일을 그만뒀다고 밝혔다.”는 마지막 멘트 때문이었다. 또 외부 업체 직원, 역시 외부 업체 직원이었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은 비용 절감을 위해 대부분 단기 계약직(기간제나 파트 타임)과 파견직으로 고용한다. 이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들은 휴게실을 제공받지 못하고, 직원 전용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없고, 심지어 고객용 화장실 사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이런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파견직에는 대부분 경력이 적은 20대 초반이 지원한다. 사회생활을 이곳에서 처음 시작하는 이들도 다수이다.

종종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 직원들이 판매 상품 등을 갖고 장난치는 모습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라와 비난과 논란이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가 무섭게 확산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어났던 지난해 3월 한 마스크 제조·판매 업체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제품을 맨손으로 만지고 얼굴을 비비는 등 비위생적인 행동을 하는 사진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렸다. 제조사는 비난의 대상이 됐고 결국 마스크 1만 장을 폐기해야 했다. 1월에는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인터넷 커뮤니티에 ‘편의점 어묵에 대해 알아보자’는 글을 올리며 비위생적으로 어묵을 다루는 행동의 사진을 올려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대구의 한 편의점 / 사진. 평화뉴스
대구의 한 편의점 / 사진. 평화뉴스

일본은 아르바이트 직원이 판매용 상품을 훼손하거나 상품을 갖고 장난치는 영상을 쇼셜 미디어에 올려 매장 영업에 피해를 주는 행위가 사회문제로 자리 잡아 ‘아루바이토(아르바이트 일본어 표기)’와 ‘테러’를 합쳐 ‘바이토 테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능력주의 사회의의 문제를 일갈한 책, [공평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델은 “일은 경제인 동시에 문화인 것이다. 그것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방법이자 사회적 안전망과 명망을 얻는 원천이다.”고 정의하고,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은 번영하는 동안 경제적 곤경에 처했을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회의 눈에, 그리고 아마 스스로의 눈으로도 그들의 일은 더 이상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라고 비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노동으로 평가된다. 개인의 사회적 존엄성은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큰 대가(임금)을 받는지에 의해 평가된다.

종종 빚어지고 있는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은 ‘직업에 대한 책임감 부족과 인정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가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하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며, 나아가 그 평가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의 노동에 싼값을 매기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마저도 값싸게 취급하는 사용자와 사회에 의해 훼손당한 존재가 아직은 살아 있다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도덕적인 일탈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노동을 통해 이뤄야 하는 안정적인 생계와 사회적 기여를 포기해야하는 세대의 몸부림을 책임감 부족과 과시욕으로만 풀이하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정은정 칼럼 15]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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