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0kg 짐 옮기며 주 62시간...쿠팡 야간노동자 '과로사' 일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1.02.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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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물류센터 고인 질병판정서 / 5kg 박스 매일 1백번 이동, 열대야에 냉방기 없어 '급성 근육 파괴'
질병판정위 "만성 과중업무·작업환경 유해, 과로 사망"...유족·노조 "일용직들 산재 내몰아, 재발방지"


하루 평균 무게 5kg 박스를 최대 100번 나르고, 최고기온 30도 이상의 열대야에 냉방 설비도 없는 물류센터 안에서 밤샘 야간작업을 하며,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은 주 62시간 10분 노동에 시달렸다.

숨진 쿠팡 경북 칠곡물류센터 일용직 야간노동자 고(故) 장덕준씨(27)의 자세한 산재 일지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 대구북부지사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의 고 장덕준씨 『업무상질병판정서』가 19일 공개됐다. 장씨 유족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전국서비스산업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가 국회 환경노동위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서 받은 질병판정서에 따르면, 쿠팡풀필먼트 대구센터 소속 일용직 노동자 장씨는 유해한 작업환경 속에서 과중한 업무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 칠곡물류센터 야간노동자 고(故) 장덕준씨 질병판정서 / 자료 제공.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쿠팡 칠곡물류센터 야간노동자 고(故) 장덕준씨 질병판정서 / 자료 제공.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고인은 지난 2019년 6월 26일부터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입사해 일주일간 닷새 또는 엿새 일하며 매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일했다. 지난해 10월 11일 택배 출고 지원업무 이른바 '워터 스파이더'로 일했고 다음 날 새벽 4시 퇴근 후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2차 부검 결과 고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나타났다.  

질병판정위는 야간 고정 근무와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사인으로 분석했다. ▲고인은 무게 3.95kg~5.5kg 박스와 포장 부자재를 매일 80회~100회 날랐다. 박스 하나를 평균 4kg로 계산하면 하루 400kg 짐을 혼자 옮긴 셈이다. 수동 자키를 통해 운반한 무게도 20kg~30kg로, 매일 20회~40회 운반했다. 20대 청년 일용직 노동자가 400kg 넘는 무게를 1년 동안 밤새 혼자 감당한 셈이다. 고용노동부의 명시한 '근골격계 부담작업' 일 평균 기준(250kg 이상)을 2배 가까이 넘겼다.    

열악한 작업환경도 사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지난해 7월 20일부대 대구와 칠곡의 하루 최고기온은 30도 이상이 35일이었다. '열대야'는 13일 지속됐다. 고인이 일했던 작업 현장은 물류센터 안으로 바깥보다 기온이 더 높았을 것으로 판정위는 추정했다. 대구칠곡물류센터는 전체적으로 냉방 설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동식 에어컨과 서큘레이터만 몇곳에 놓여져 있었다. 고인의 동료 노동자들과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짐작해봤을 때 근무 장소는 야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더웠던 것'으로 판단했다.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 유족과 노조 기자회견(2021.2.19.칠곡 센터)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 유족과 노조 기자회견(2021.2.19.칠곡 센터)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시간 노동도 고인을 괴롭혔다. ▲야간근무의 경우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휴게시간 제외)해 근무시간을 산정한다. 숨지기 일주일 전 업무시간은 주 62시간 10분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이전인 2주에서 12주까지 평균 업무시간도 주 58시간 18분으로 나타났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을 넘겼다. 당초 쿠팡 측은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했다"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판정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1년 간 15kg이나 빠진 생전의 몸무게가 이를 입증한다. 결국 고인은 1년 내내 무거운 택배 박스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야간노동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뒀다. 판정위는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면 고인은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육의 과다 사용이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냈다. 

판정위는 또 "업무시간 과다, 야간근무, 중량물 취급, 근무일과 휴일 불규칙, 정신적 긴장, 유해한 작업환경에 의한 과로사라는 유족 주장을 토대로 살펴봤을 때, 고인은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부담 가중 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됐다"면서 "산업재해보상법상 업무상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과로사 더 없도록"...쿠팡 본사 앞 유족과 노조의 쿠팡 규탄 기자회견(2021.2.18) / 사진 제공.유족
"과로사 더 없도록"...쿠팡 본사 앞 유족과 노조의 쿠팡 규탄 기자회견(2021.2.18) / 사진 제공.유족

유족과 노조는 19일 쿠팡 칠곡물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가 아니라는 쿠팡 말은 거짓으로 나타났다"며 "여전히 물류센터 일용직 청년 노동자들이 산재에 내몰려 있다. 쿠팡은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고 유족에 적절한 보상을 해 이런 일이 없게 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18일에는 서울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을 규탄하며 "심야노동과 비정규 노동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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