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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을까?

기사승인 2021.02.23  15: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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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동 칼럼]


 주말 저녁에 테니스를 마치고 친구와 집 근처의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 중년의 세 남자 손님들이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로 현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에 의기투합하다가, 급기야는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 환자의 숫자를 정부에서 그때그때의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우리 지역의 술집에서 중년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늘 익숙하지만, 다들 외양으로 보아 학식이나 교양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어서 그 터무니없는 사실에 대한 격한 공감들에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전날에 확진된 환자들의 수가 집계되어 발표되고 그 추세에 따라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제한의 수위가 정해지고 있다. 지역에서 발생한 확진자의 수뿐만이 아니라 발생한 동네와 확진자의 동선까지 다 공개되어 시민들의 휴대폰으로 전송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이를 장기간에 걸쳐 조작할 수 있을까? 약간의 생각만 거치더라도 그 불가능함을 알 수 있음에도 멀쩡한 사람들이 다른 손님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떠들고 술잔을 부딪는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인 마이클 슈머가 쓴 <스켑틱, 회의주의자의 사고법>이란 책에는, 과학 지식이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하여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하여 유사과학이나 초자연적 사실을 덜 믿는 것이 아니라는 의외의 조사결과가 나온다. 똑똑한 사람들이 어떠한 주장의 진위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에 자신의 똑똑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받아들인 주장을 방어하는 데 그 똑똑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새로운 사실이나 주장을 접하였을 때 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장단점을 파악하여 이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타고난 유전적 요인이나 살아오면서 받은 여러 가지 영향과 개인적 경험에서 형성된 편견으로 걸러진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는데, 막걸리집의 세 남자들이 ‘현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의 수를 조작하여 발표한다’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이라는 편견에 맞아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사진 출처. KBS <더 라이브> '유투브 총선, 확증편향에 빠지다'(2020.04.21) 방송 캡처

 근대를 연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미 이러한 인간의 인식에 관하여, “인간의 마음은,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하고 평평한 렌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온갖 미신과 사기로 가득 찬 마법의 렌즈와 비슷하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확증편향의 성향이 엄청나게 발전한 과학의 혜택을 입고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에게 더 극심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균형 잡힌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시민들을 존립근거로 삼는 민주주의에도 해롭다는 것은 최근의 국내외의 사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 등의 발달로 현대인은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헤매고 있으며, 가장 뛰어난 사람들조차도 가짜 뉴스에 속아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본다. 과거와 같이 책임 있는 언론매체에 의해 걸러지는 뉴스가 아니라 개인이 생산하는 뉴스들이 인터넷상의 사회관계망을 통하여 무한히 확산되고,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업들은 이익증대를 위하여 뉴스의 진실성과는 관계없이 조회 수가 많은 선정적인 뉴스를 더 많이 노출시킨다.

 이러한 환경은 점점 더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고 쉬운 대답(easy answer)을 제공하는 가짜 정보에 현혹되게 한다. 책이나 긴 분석 기사를 읽는 시대에서 짧고 자극적인 문장으로 제공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거쳐 이제 젊은 세대들은 아예 텍스트가 없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이 제공하는 시각적 이미지로 정보를 접하고 있다.  
 
 마이클 슈머는 현대인들이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제시된 어떤 정보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회의주의자(Skeptics)'가 될 것을 요구한다. 회의주의자라고 하여 모든 새로운 것에 관하여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서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진‘ 회의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참 어렵다.

 
 







[이재동 칼럼 15]
이재동 / 변호사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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