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적은 나쁜 수단을 정당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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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테러리스트들이 대도시 속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어떠한 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예정된 폭발 시간이 되기 겨우 몇 시간 전에 그 일당 중 한 명이 붙잡혔다고 하자. 붙잡힌 테러리스트는 계속된 심문에도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고 할 때, 경찰은 이 사람을 고문하여 그 장소를 밝혀내 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구하는 것이 허용될까?

 물론 이는 헌법에서 엄격하게 고문을 금지하고 있는 현대 국가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헌법상의 원칙을 지킴으로 인하여 정보를 얻지 못하고 결국 수백 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면 경찰은 그 비난을 면할 수 있을까?

 한 범죄자의 신체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침해하는 작은 불법으로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임에도 왜 이를 못하게 막는 것일까. 가치의 충돌이 발생하는 이러한 경우는 법치와 인권을 절대시하는 현대 국가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우리 영화에서도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 변호사 선임권이나 진술거부권을 또박또박 말해주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미란다 원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미란다(Miranda)라는 상큼한 이름은 세계 인권의 역사에 길이 남았지만, 사실 이 젊은 남자는 무고한 희생자가 아니라 사악한 성폭행범이었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유죄판결을 뒤집어 미란다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는데, 이는 경찰이 미란다에게 신문에 앞서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절차상의 이유에서였다.

 진범이냐의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깨끗한 손(clean hands)'을 가져야 한다는 이러한 판결들은 불법적인 수사관행을 개선시켜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하였지만 그 반면에 진정한 범죄자들을 놓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범죄자가 처벌받지 못할 위험성보다는 무고한 시민이 부당한 수사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고 처벌 받을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접대와 뇌물 혐의를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몰래 출국하려는 것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막은 관리들이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을 예정이다. 김학의에 대한 수사에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던 검찰이 외국으로의 도피를 막은 관리들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출입국 본부장에 대하여선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는 것은 참 주객전도에다 균형을 잃어도 한참 잃은 수사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하여도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으로 출국을 막은 것에 관하여 이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출입국관리 본부장은, “국경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출입국 본부장인 제가 아무 조처를 하지 않고 방치해 (김학의가) 해외로 도피하게끔 두어야 옳은 것인지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하였다고 한다.    

사진 출처. KBS 뉴스 <박범계, '무혐의' 수용했지만…"절차적 정의 의심받아 유감">(2021.3.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 뉴스 <박범계, '무혐의' 수용했지만…"절차적 정의 의심받아 유감">(2021.3.23) 방송 캡처

 어영부영하다가 그저께(3. 22.) 공소시효를 넘겨버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모해위증 교사 사건에서(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놀랄 만하다!), 돈을 주었다고 말한 한만호라는 사람이 법정에서 갑자기 진술을 바꾸자 당황한 검찰은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들을 불러 한만호가 ‘법정서 거짓말하였다’고 하는 말을 감방에서 하였다는 증언을 하게 한다. 아마 그때 그 검사들도 그런 정의감(돈을 받은 것이 확실한 한명숙이 무죄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김학의가 외국으로 도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지는 않는 것이 옳았고, 돈을 받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하였음이 확실한 한명숙이(나는 진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검사가 재소자를 불러 증언을 연습시키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미란다는 무죄 석방된 이후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 다시 재판을 받고 10년 형을 살았다. 석방 이후에는 ‘내가 그 유명한 미란다입니다’라는 미란다 카드를 만들어 구걸하며 살다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시비 끝에 칼에 찔려 죽었다고 한다.

 아무리 의도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루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경우에 따라 정의는 늦게 오기도 하고 다른 길로 돌아오기도 하고 더러는 아예 안 오기도 한다. 옳지 않은 결과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마땅한 수단이 없을 때에는 이를 수용하고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더 큰 가치를 지키는 길이고 헌법을 통하여 맺은 약속이 아닐까.      







[이재동 칼럼 16]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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