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윤리헌장'이라는 간판만 일렁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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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한동안 땅을 사러 다녀보았다. 취재하고 기사쓰기도 바쁜데 이곳저곳 다니기란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차도 없었다. 집사람이 복덕방에 알아보고 연락이 오면 중개인 차로 가보곤 했다. 중개인은 좋은 점만 근사하게 말했는데, 가장 안 좋으면서 복비가 많이 생기는 땅부터 먼저 권하는 것 같았다. 서북쪽 비탈진 임야, 고속도로 통행 차량의 소음이 들리는 밭 등등 순이었다. 몇 번 보는 것도 힘들어 나지막한 구릉 사이로 길이 나있는 복숭아밭 대추밭 2필지를 택하였다. 30~40년 전이다. 공동명의로 상속받은 황금동 대지를 팔게 되면서 변두리에 대토하기 위해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매입한 그 땅이 ‘맹지’라는 사실은 내가 신문사를 퇴직하기 얼마 전에 알게 됐다. 구릉 사이로 난 길이 남의 소유라는 것을 중개인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 정도의 의문도 없었다. 할 일이 많은 직장을 다니면서 땅을 산다는 게 부담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묘목 철이다. 4월 5일 식목일은 늦고 3월중 심는 게 맞다. 심을 때가 있다면 무슨 묘목을 심을지를, 아는 사람 또는 인터넷의 조언을 받아 규모와 용도에 맞게 수종과 수량을 정하게 될 것이다. 작은 텃밭에 고추와 가지 등 채소류 자리를 남겨두고 둘레를 매실과 체리와 두릅과 참죽과 가시오가피 한두 그루씩 심을 수도 있다. 정원을 꾸민다면 조경수로 회화나무 단풍나무 배롱나무 수수꽃다리 주목 반송 한 그루씩 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왕버들나무? 이 수종은 유실수에는 물론 없지만 조경수에도 아예 없다. 이달 초 연일 왕버들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신문과 방송의 조명을 받았다. 정부투자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시흥지구내 땅 2,500㎡에 심은 수종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투기의혹과 함께 수종조차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더욱 많은 보상을 노려 ㎡당 25그루나 빽빽하게 심은 점, 보통의 조경수가 아닌 ‘희귀수종’의 경우 보상전례가 없어 책정액이 커질 수 있는 점 때문이다.

KBS 뉴스 '대토보상 노렸나?…치밀한 준비 흔적도'(2021.3.4) 방송 캡처
KBS 뉴스 '대토보상 노렸나?…치밀한 준비 흔적도'(2021.3.4) 방송 캡처

 지난 3월 6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보상비용은 주당 1만원(이식비용 5천원의 2배 보상), ㎡당 25주, 2,500㎡이므로 10000 × 25 × 2500, 6억2천5백만원쯤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식할 때 고사율(枯死率) 통상 5~10%에 대한 보상비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같은 신문은 한 조경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30년 동안 이 사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왕버들나무를 취급한 적이 없다. 또한 한 평(3.3㎡)에 한 그루 식재가 적당한데 이렇게(25주) 밀식한 걸 보면 그는 보상의 최고수 ‘타짜’의 솜씨이다.”

 그런데 언론은 왕버들나무를 ‘희귀수종’으로 잘못 보도하고 있었다. 다른 신문과 방송도 같은 맥락으로 이 수종을 ‘희귀수종’으로 보도했다. ‘조경수로서’라는 한정사를 넣더라도 ‘희귀수종’이라는 표현은 반어적(反語的)이다. 토지보상 감정업계에서는 편의상 그렇게 명명할지 모르나 왕버들은 희귀(稀貴) 수종이 아니다. 매우 흔한 수종이다. 이를 희귀수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꽃집에서 팔지 않는다고 해서 질경이나 토끼풀을 희귀초본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왕버들은 번식도 아주 쉽다. 그런 면에서도 ‘희귀’는 아니다. 봄철 달성습지 같은 군락지에 가면 원하는 대로 솜털 같은 다량의 꽃씨를 구할 수 있고 촉촉한 흙에 얹어 두기만 해도 개체가 생겨난다. 삽목 또한 쉽다. 줄기를 연필 길이로 잘라서 젖은 모래흙에 꽂아두기만 해도 뿌리가 나면서 독립개체가 생겨난다. 조경식재학이나 원예번식학 같은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기초적인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대량으로 번식할 수 있으므로 구태여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고 그래서 조경업체에서도 아예 팔지도 취급하지도 않는, 질경이나 토끼풀 같은 것이 왕버들이다.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품격 없는 나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성주 성밖숲의 왕버들 고목들과 달성군 가창 단산리, 옥포 간경리, 화원 천내리의 수령 200 ~ 300년의 왕버들은 수형이 아름다우며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수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라는 공기업 공직자들도 직무 외 사적으로 땅을 사러 다닐 수도 있다. 물건을 보러 다니는 게 쉽지 않겠지만 상속받은 재산 등 여윳돈으로 얼마든지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이긴 하나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착복하며 돈도 없으면서 간도 크게 수십억원을 대출받아 맹지이건 아니건 마구 사들여 그 자리에 창의적인 수종을 찾아내 밀식하는 투기행위 속에는 범법, 부도덕, 비윤리, 몰염치, 탐욕 등등이 꽉 차 있다.

LH 홈페이지
LH 홈페이지
LH 윤리헌장 / 출처. LH 홈페이지
LH 윤리헌장 / 출처. LH 홈페이지

 LH라는 공기업의 일부 공직자가 이렇게까지 타락성을 보이는 것은 공직자의 윤리시스템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혹시나 싶어 LH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완벽에 가까운 윤리경영을 하고 있었다. 윤리경영 추진체계도 죄다 갖추었다. ‘CEO의 강력한 윤리경영 의지’를 바탕으로 ‘윤리적 기업 환경 조성’, ‘공정 투명한 업무 절차’, ‘내부 견제시스템 강화’ 등을 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윤리규범으로는 ‘LH윤리헌장’, ‘임직원 행동강령’, ‘직무별 행동수칙’, ‘퇴직임직원 윤리강령’까지 모두 구비해 놓았다. 추진조직도 윤리경영위원회, LH인권윤리센터, 감사실, 법무실, 미래혁신실 등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내외 교육, 부패방지제도, 내부감사제도, 신고상담, 평가환류 등 없는 게 없었다.

 ‘윤리헌장’은 "… 이러한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공익 우선과 국민행복을 추구하여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든든한 국민생활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 … 이를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윤리문화 정착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 모든 임직원이 지켜야 할 올바른 행동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윤리헌장을 제정하고 실천을 다짐한다."고 하였다.  

 ‘투명’과 ‘공정’과 ‘올바른’과 ‘가치’가 이렇게 헛도는 공직현장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전에는 공복(公僕)의 의무를 팽개친 일부 공직자의 일탈행위로 보았다. 하지만 LH가 상세하게 조목조목 밝힌 대목들을 보면서 임직원의 일련의 투기의혹에 대한 모든 잘못과 모든 책임이 윤리경영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방한 LH의 역대 사장들에게 있다는 결론을 나는 내리게 되었다.

 본사는 저 멀리 진주라 천리길이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LH는 잡초만 무성하다. 한 번도 김을 매지 않은 밭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윤리헌장’이라는 간판만 바람에 일렁거린다.
 






[유영철 칼럼 27]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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