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아프면 산업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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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칼럼]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하여!


4월 18일 일요일 아침 8시, 서른둘 젊은 건설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대구 달서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벽체폼을 해체하던 중 지지대가 받치지 않은 폼이 넘어지면서 노동자를 덮쳤고, 그로 인해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지만 회사는 공사기일을 당기기 위해 출근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안전관리 책임자는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장담은 넘쳐나지만, 일터에서 날아오는 부고는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대구 건설현장에서 숨진 노동자의 분향소(2021.4.21.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 사진. 정은정
대구 건설현장에서 숨진 노동자의 분향소(2021.4.21.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 사진. 정은정

일터의 사고로 인해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면 일시적이더라도 세간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질병 재해다. 2020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2,062명 중 사고 사망자는 882명이고, 질병 사망자는 1,180명이다. 질병 재해자는 15,996명에 이른다. 이는 2019년 대비 801명, 5.3% 증가한 것이다.

매일 되풀이되는 장시간 노동, 휴식도 없이 기계처럼 반복하는 동작, 몸이 감당하기 힘든 노동강도, 각종 유해물질, 직장 갑질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질병 발생의 원인이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질병이 자신의 업무로 인해 발생했다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해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쉬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참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우선한다. 사회와 기업이 그렇게 강요한다.

사고처럼 명백한 경우에도 사업주 눈치를 보며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고 공상으로 처리하는 사례가 여전한 상황에서 업무상 질병은 얼마나 많이 감춰졌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업무상 질병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이 아니라 전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 일이 빈번하면서 2018년에는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연간 3,000억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어렵게 업무상 질병 산재 신청을 해도 그 다음부터 문제가 더 크다. 우선 산재 인정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다. 2020년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9,925건의 평균 처리기간은 121.4일이었다. 길게는 150일이 넘는 지역도 있었다. 직업성 암 등의 경우 평균 1년이 걸리고 있다.

2020년 질병재해 발생현황(* 기타는 직업성 암, 세균·바이러스, 정신질환 등) / 자료 출처. 고용노동부
2020년 질병재해 발생현황(* 기타는 직업성 암, 세균·바이러스, 정신질환 등) / 자료 출처. 고용노동부

이렇게 업무상 재해 처리 기간이 길어지면 노동자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법은 병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으로 유급 병가를 인정하는 사업장은 극히 드물다. 무급이라도 1개월~3개월 병가가 인정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많은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아프면 알아서 사표를 써야하는 상황이다.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월급을 받지 못하고 치료비까지 지출하면서 몇 달씩 산재 승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산재 승인이 늦어지면 회사로부터 해고 압박을 받게 된다. 산재 지연 처리는 기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생계 곤란과 해고 위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파도 참고 일하면서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다 낫지 않았는데도 일터로 나오게 되어 질병이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업무상 질병 승인 기간이 대폭 짧아져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4월28일은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캐나다의 노동조합이 1985년 전국적인 기념행사를 가졌고, 1996년 유엔지속위원회에 참여한 노동조합 대표들이 추모식을 갖고 전 세계에 동참을 호소한 이래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은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노동계만의 행사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기념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며, 매해 가장 많은 산재사망을 낸 기업을 알리는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집회를 진행한다. 올해는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5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 산업안전보건법·산재보험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 산재처리 지연 근본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오는 4월 28일에는 노동계의 목소리만 울릴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대로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위 법령 제정과 산재보상보험 제도의 개혁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은정 칼럼 17]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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