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염색공단 여공의 죽음...영화 <희수>로 본 '산업재해'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1.06.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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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대구 여성 영화감독 감정원, 첫 장편 독립영화...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진출작
"평생 일하느라 여행 한 번 못 간 친구 모티브...괴로운 요즘, 노동자 안전에 대해 작은 울림있길"


뿌연 연기를 내뿜는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을 내려다보는 짧은 머리의 뒷모습. 여공 '희수'다.

일만 하느라 여행 한 번 못 간 희수. 남자친구와 여행 약속도 못 지켰다. 일하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은 뒤 공장을 못 떠나고 맴돈다. 죽어서야 퇴사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애 첫 여행을 떠났다.

대구 출신 1990년생 여성 영화감독 감정원(31)의 첫 장편 독립영화 <희수>가 오는 17일 개막하는 제3회 평창국제영화제에서 선 보인다. <희수>는 산재로 숨진 염색공단 여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산재로 숨진 뒤 영혼이 되어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을 내려다보는 여공 희수 / 사진.영화 <희수>
산재로 숨진 뒤 영혼이 되어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을 내려다보는 여공 희수 / 사진.영화 <희수>

<희수>는 지난 4월 29일~5월 8일까지 열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한국경쟁에 진출한 작품이다. 대구에서는 지난 5월 30일 대구 독립영화전용극장 오오극장에서 한 차례 상영했다. 정식 개봉일은 미정이다. 코로나19 상황을 보고 배급사가 결정되는 대로 올 하반기나 내년 봄을 기대하고 있다.

영화는 산재로 숨진 여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산재 관련 직접적 언급은 영화 내내 비춰지지 않는다. 다만 희수가 죽은 뒤 염색공단과 강원도 묵호를 기차로 오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지난 5월 27일 오오극장에서 만난 감정원 감독은 "대구에서도 이질적인 곳이 염색공단"이라며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항상 비산동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내가 사는 도시인데 저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죽은 희수가 대구지하철 3호선을 타고 공단역을 지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 <희수> 감정원 감독과 오오극장에서 인터뷰(2021.5.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희수> 감정원 감독과 오오극장에서 인터뷰(2021.5.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감 감독은 "처음부터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이나 염색공단에 집요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면서 '오히려 이후에 관심을 가진 케이스다. 그 공간, 이미지가 주는 힘에 이끌려 작품을 찍었다"고 했다.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인 '희수'는 감독의 실제 친구 이름에서 따왔다. 감독은 "집안 가장이라 닥치는대로 일만하다 평생 한 번도 여행가지 못한 친구 '희수'가 모티브"라며 "공장에서 일하거나 산재를 당한 건 아니고, 아직 살아 있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희수는 살아서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염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감독은 산재를 직접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자제했다. '왜 죽었나' 구조적 문제보다 영혼이 된 희수가 부유하듯 이곳 저곳을 떠도는 모습이 나온다. 망자는 죽어서도 식당과 여관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감 감독은 "희수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모른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산재로 죽는다"며 "최근에는 더 많은 이들이 죽고 있다. 단지 산재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 죽고 나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겠나. 그런 맥락에서 시간과 공간을 섞어 작품을 찍었다"고 밝혔다.

희수가 숨진 장면은 소리가 그 공포감을 더 한다. 감독은 "사고 당해 널부러진 희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실제 촬영한 곳에서 기계를 봤을 때 '기계가 언젠가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늘 만지는 흰천 뒤로 더 이상 걸어나올 수 없는 여공의 죽음. 그 소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염색공단을 선택한 것도 희수가 마지막까지 손을 맞닿는 것까지 굳이 차가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나마 온기를 느낄 법한 것을 찾은 게 천이었다"고 전했다.

영화 <희수>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진출작이다 / 사진.영화 <희수>
영화 <희수>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진출작이다 / 사진.영화 <희수>

영화에는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깔려있다. 감 감독은 "너무 많은 최근의 산재 죽음에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영화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켜보거나, 어떤 노력을 할까 고민하는 정도"라며 "누군가 산재로 죽어나가는 요즘 시대에 죽은 이를 대체할 누군가는 또 있다. 노동자에 대한 안전과 처우에 대해 작은 울림이 있길...이 영화가 그렇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이 영화는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이야기"라며 "여행도 못가며 하는 노동의 끝은 뭘까. 그 최악이 죽음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연출자로서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촬영하는 동안 감독은 실존하는 스무살 공장 노동자 '이학선'씨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영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조만간 기회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영화 <희수>는 오는 18일과 20일 평창국제평화영화제(PIPFF)에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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