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그 밤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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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남 /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

 
 2015년 겨울, 육아휴직 중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퇴근한 남편에게 둘째를 맡기고 뉴스를 보는데, 신생아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아이를 다른 데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을까. 충격이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다른 곳에 맡기지. 아기는 괜찮을까.

 몇 년이 지나고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다 다시 이 사건과 마주했다. 
 
 "내 식대로 정리하면, 그녀는 배 위로 트럭이 세 대쯤 지나가는 산통을 병원 침대가 아닌 화장실에서 견뎠다. 탯줄을 직접 잘랐다. 아기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피, 양수, 배설물 같은 오물을 직접 처리했다. 과다 출혈의 위험은 운 좋게 피했다. 출산 직후 뼈가 벌어져 걷기도 힘든 몸으로 기름때와 핏덩이가 묻은 아기를 수건에 싸서 택시를 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
 출산은 성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는 모성의 힘으로 낳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온다. 그리고 낯선 존재의 출현은 공포와 위험으로 다가온다.
 갓난아기는 신성한 생명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바뀌어야 한다. 신성함은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규정되는가.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구출된 아기는 다행스럽게도 병원 신생아실로 옮겨져 건강한 상태라는데, 미역국도 못 먹고 초유가 돌아 젓몸살을 앓고 있을 ‘영아 살해 미수’ 혐의자 산모는 철창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기사를 보며 내가 했던 수많은 생각 속에 아기 엄마의 밤은 없었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이 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는 뜻이다. 알고 싶은. 그러나 알 수 없는. 그래서 보고도 모르는"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보고도 몰랐던 아기 엄마의 그 밤을 몇 년이 지난 후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보고도 모르는, 아니면 아예 보지도 못한 삶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항상 만나는 사람들과 만나고 비슷한 음식들을 먹고 같은 일을 하면서, 얼마나 다른 삶을 만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 비켜서면 비켜선 만큼 다른 것들이 보인다. 그러다 일상으로 돌아와 생각 없이 삶에 쫓기다 보면 나와 다른 것들은 다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몸과 정신을 일상과 다른 곳에 데려다 놓으려고 애쓴다. 사무실에 있는 것이 당연한 시간에 사무실이 아닌 곳에 나를 데려다 놓기(그렇다고 사무실에 없어야 하는 시간에 사무실에 나를 데려다 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몸을 데려다 놓지 못할 때, 정신을 다른 곳에 데려다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읽기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내서 오래 읽기보다 잠깐씩 책을 읽는 경우가 더 많다.

 오후 시간, 정신없이 일하다가 모든 일을 내려놓고 20분 동안 책을 읽거나(물론 전화나 다른 일로 흐름 끊기기 일쑤지만) 퇴근 후 아이들이랑 저녁 먹고, 숙제 봐주고, 같이 놀다가 모든 집안일을 뒤로 한 채 방에 누워서 잠깐 책을 본다(이때도 흐름 끊기기 일쑤다, 아이들 때문에 혹은 잠이 들어서).

 「싸울 때마다 투명해 진다」에서 은유 작가는 시를 읽었다고 했다.
 퇴근 후 어지럽혀진 집을 보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 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손에 잡히는 시집을 빼서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한 30분씩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은유 작가의 책을 정신의 우물가 삼아 '아기 엄마의 그 밤은 어땠을까'와 같은 질문들과 마주했다.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은 애를 낳은 나에게도 왜 듣기 불편한 말일까, 감정의 저울질 없이 사랑에 투신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생생한 아픔보다 시든 행복을 택할까. 어린 산모의 삶과 내 삶은 얼마나 멀고,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진다.
 
 
 
 작가의 신작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고 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9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삶을 나는 살아보지 못했다. 청와대 견학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계좌이체를 할 때 현금을 꺼내야 하는 아이들. 주민등록번호 숫자대로 마스크를 구입하고 모든 장소에서 QR체크인을 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책에서 만나고 있는 중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아내는 은유 작가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속의 길] 172
 이경남 / 대구시교육청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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