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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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 성적기반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음이라 언제 여기였던가 했는 데 벌써 저만치 가버린 줄기를 바라봅니다. 70년을 살면서 숱한 사람들을 대표로, 지도자라고 뽑고, 그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고(언제나 그렇듯이 종내에는 실망만 가득했지만), 그래도 또 다른 모습을 기다리며 한줄의 글로써 그들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동서양의 두 가지 이야기로 교훈을 삼을까 합니다

첫째는, 영화 <자산어보>에는 학문에 목말라하는 청년 어부 장창대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양반의 서자로 뭍에 사는 아버지에게 번듯한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타고난 학구열로 공부에 매진하지만 가진 책이 별로 없어 <명심보감>만 달달 외우도록 읽던중 <大學>을 얻어 기뻐하며 읽기 시작하는데 대학의 첫 구절을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해서 쩔쩔매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감독 이준익, 2021.3 개봉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 감독 이준익, 2021.3 개봉
그 처음이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 대학의 道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히 선함에 머무는 데 있다.)이라 나옵니다. 뜻을 몰라 괴로워하던 중 정약전 선생을 만나 재친(親)민이 아니라 재 신(新)민이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백성을 친하게 한다’가 아니라 ‘백성을 새롭게 한다’라고 풀이해야 한다고 배우게 되고 나아가 다른 난관인 ‘善’의 개념으로 ‘至善’이란 인간 최고의 가치,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는데 그걸 ‘지극히 착하다’가 아닌 ‘지극히 선함에 머물러 있다’라고 하여 그 뜻을 통달하게 되고 비로소 참 스승으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를 정리한다면 대학지도는 조선 태조는 ≪대학≫의 체재를 ‘제왕의 정치귀감으로 편찬한’ 삼강령 팔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다음 백과). 다시 말해서 임금이 백성을 다스림에는 ‘밝음(공정)’에,‘새롭게 함’으로 ‘선함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둘째는 미국에서 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유명한(?) 마이클 센들 교수의 새책 『공정하다는 착각』(함규진 역, 주 미래앤, 2020.12)에서 나오는 공정에 대한 문제의 제기입니다. 책에서 그는 결론으로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조건의 평등을 말합니다. 또 이 조건의 평등 모습 역시 영국의 경제사학자 토니(2019)는 저서 『평등』에서 “기회의 평등은 기껏해야 부분적인 이상이며 성공의 기회는 거시적으로 본 실질적 평등을 대체할 수 없다. 소득과 사회적 조건의 극심한 불평등을 없애는 것처럼 만들 수 없다”고 하여 사회적 복지에 대한 개인의 존엄과 문화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요구합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마이클 샌델 지음 |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공정하다는 착각> -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마이클 샌델 지음 |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다시 말해서 능력주의라는 것에 대해 공정이라는 전제를 놓고 볼 때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위 금수저 등의 수저론이나 부모 잘만나는 것도 능력이니 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박혀있는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입후보자들은 시장 바닥을 훑고 물건을 주어담으며 떡볶이며 어묵을 먹는 모습은 이젠 식상합니다만, 그들이 끝까지 내세우는 것은 흙수저임과 공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방식이기에 취하는 행동이라 믿습니다.

최근 국내 제일 야당의 당수가 젊은 사람이 되어 놀라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당한 과정을 거쳐 대학과 미국유학을 거쳤다고 합니다만 우리사회의 젊은이 몇퍼센트가 강남 제1학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최고의 대학과 더구나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울어지지않은 운동장에서의 미국 유수의 대학을 나오게 된 것이 공정한 게임에 의한 것입니까? 과연 우리 청년들의 몇%가 이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지요? 대다수 국민들의 삶-김용균님을 생각합니다-에서 이리 호사스런 여유가 가능한 사람이 대통령 운운하는 것이 정말 정당한 사회입니까? 
 
새 대통령을 말하는 이마다 공정과 법치를 나아가 정당성을 말합니다만 서민들의 뼈저린 아픔과 참기 어려운 인고의 시절에 막말이 난무하고 과거의 상흔을 뜯어내어 침소봉대하고  거짓말 논쟁으로 싸우는 모습은 정말 싫습니다

구체적으로, 책상물림으로 권력을 잡고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치부한 사람(본인이 아니라도 처족이라도), 근로의 현장이 뭔지도 모르면서 주 120시간 노동을 말하는 사람,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사람, 안중근의사, 윤봉길 열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즉, 공정을 말하면서도 불공정의 극치를 달리는 이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아니올시다'라고 같이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동시에 최소한의 돈에 목숨을 걸고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가 되던 기본적인 소득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사람,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집한칸 마련하는데 뼈 빠지게 노력하고 집 때문에 결혼을, 자녀를 미루는 청년들에게 살 집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 없이 살아온 안타까움이 철철 넘쳐나 아픔을 같이 괴로워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 달려가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고] 김영민
김영민 / 구미도시재생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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