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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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민 /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펴냄 | 2012)

 
올해 초에 역술원에 가서 사주를 봤다. 지난 2년여 동안 일하는 거처를 3번이나 옮기게 되었고, 올 3월부터는 새롭게 대구노동세상 사무국장 일을 하기로 해서 신수를 보러 간 것이다.
 
대략의 사주풀이는 이렇다. 내 사주에 나타난 성격은 속으로 굉장히 깐깐하고 고집이 세고 잘 따진다고 한다. 그냥 따지는 게 아니라 6하 원칙에 의거해서 따지는 수준이라고 한다(실제로 이런 성격으로 가족 내에서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자주 부딪힌다. 별거 아닌 일에 자꾸 따진다고). 또 동시에 2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머리는 좋은데 한편으로 모든 것을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한다(그래서 일을 추진하는데 굉장히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검토하느라 좀 더디다). 35세에서 45세 사이에는 조직사회운이 없다고 한다(그 시기에 나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회사생활이 좀처럼 맞지 않아 뛰쳐나왔다. 잘 한 건가?). 선천적으로 위장에 관련된 질환을 조심해야 하고 물이 부족해서 오는 병을 조심해야 하니 하루에 물 2리터를 마시란다(최근에 요도염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요도염은 체내 수분이 부족해서 생긴다고 한다). 55세 이후에 대운이 오고 큰돈을 번다고 한다. 움직이는 돈에는 인연이 없으니 주식은 하지 말고 부동산에 돈을 묶으라고 한다(주식할 생각도, 돈도 없고 부동산은 더군다나 아닌데요 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대구노동세상은 5개 분과로 나뉘어져 회원들이 각 분과별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독서토론을 하는 ‘열공분과’에 속해서 활동하고 있고, 우리 분과는 일 년에 대략 5~6권 정도의 새로운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토론을 한다. 각 회원들이 본인이 원하는 도서를 추천하면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누게 된다. 올 4월에 한 회원이 ‘사주명리학’을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사주팔자라는 것이 그냥 모든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건지, 단순히 운세풀이를 하는 수단인지, 아니면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를 갖고 있는 건지, 제대로 한번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미 사주명리학에 대한 공부를 어느 수준까지 마친 제안자가 추천하는 책을 함께 읽고, 1회 차는 제안자의 강연으로, 2회 차는 회원 각자가 본인의 사주팔자를 뽑고 간략히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 때 함께 봤던 책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고미숙 선생님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이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펴냄 | 2012)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펴냄 | 2012)

보통의 책들도 머리말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 먼저 얘기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앞부분이 조금 길다고 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에 대한 오해가 우리 사회에 많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머리에 들어가면서 본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입구’(보통의 다른 책의 서론)라고 불리는 파트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사주명리학에서 얘기하는 운명이 우리 세상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얘기해준다. 이 부분이 나는 제일 공감도 되고 매우 흥미로웠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총 4부로 글이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지금 시대에 명리학이 미신처럼 여겨지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왜 현재 명리학이 필요한지를 얘기한다. 2부부터는 본격적인 사주명리학에 대한 공부이다. 2부에서는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하는 8개의 글자와 용신(用神)에 대해 설명하고 3부에서는 조금 더 나아가 십신(十神)과 육친(肉親)에 대해 얘기하고 마지막 4부에서는 사주명리학을 적용한 케이스를 5개 보여준다. 2부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공부는 여기서 따로 소개하지 않겠다. 설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건 직접 한번 읽어보고 이해해야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 2008년 2월 11일 밤에 남대문에 불이 났다. 다들 알고 있듯, 방화범에 의한 화재였다. 토지보상금 때문에 불평지기가 쌓인 70세 노인이었다. 이 불의 진짜 원인은 그 노인의 불평이었을까? 사대문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남대문일까? 아마 방화범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둘 사이의 인과적 간극은 너무나 아득하다. 그해는 무자년(戊子年), 운기상으로 ‘불의 해’였다. 남대문이 불타고 난 후, 봄부터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가 불거지면서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끔찍한 화재를 동반한 용산대참사가 벌어졌다. 말하자면 불로 시작해서 불로 마친 해였다. (덧붙이면, 남대문의 남쪽은 오행상 불(火)을 의미한다. 또 불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예’에 속한다. 남대문의 다른 이름이 숭례문인 건 그 때문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중에서)
 
명리학이 신비와 미신 사이에 존재하게 된 연유를 저자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찾고 있다. 서구의 시선으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타자와, 하위주체화하는 방식으로 명리학도 그렇게 읽혀졌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소위 진보적 진영에서도 유물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사상사를 구획하며 명리학을 비과학적 숙명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적 담론에 기본적으로 자연 혹은 우주가 결락되었음을 지적하며 자연의 이치 속에서 존재와 운명을 탐색하고자 했던 인류의 노력이 오래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애니어그램과 별자리, 수상과 관상, 풍수지지 등등.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으니 앎이 곧 길이자 명이라고 한다.

보통 사주명리학을 숙명론이 아니냐고 한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해진 사주팔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환한다고 얘기한다. 중요한건 팔자의 각 항목들 자체의 본성이 아니라, 각각의 항목들이 어떻게 조합, 배치되느냐이다. 이것을 각자가 알고 운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주명리학의 핵심이다.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84p)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84p)
팔자가 사회적 조건과 마주치는 기운의 배치를 십신이라고 하는데, 내가 직접 뽑아본 나의 팔자(십신을 점수로 환산)에는 나 자신에 대한 점수가 제일 높았다. 내가 고집이 센 건 팔자에 나와 있었다. 오행(목화토금수) 중에 내가 가지지 못한 기운이 유일하게 화(火) 기운이다. 그래서 올 여름에 화려한 색상 (빨간색, 무지개색) 티셔츠를 여러 벌 사서 입었다(아래 사진). 배운 걸 실천하고는 있는데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아직 실험중이다.

15년간의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활동가로 살겠다고 나온 것이 2016년도이다. 대한민국 전역이 촛불의 열기로 가득할 때였다. 박근혜를 위시한 적폐세력과 아닌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되는 것이 옳아보였다. 진보와 보수, 선과 악, 노동과 자본, 서민과 재벌.... 모든 것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해야 했으며 이유가 있어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살아보니 부지기수였다. 이런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준 것이 이 책이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과 사회 속에서 살고 모든 문제도 여기서 발생하고 해결한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내 주위에는 사람 말고도 자연이 존재하고, 내 발아래에는 지구라는 땅이, 내 머리위에는 하늘이 존재한다. 하늘 너머에는 태양이 존재하고 그 너머에는 우주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나의 운명을 잘 항해해 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책 속의 길] 175
강동민 / 대구노동세상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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