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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계는 순서 없이 귀한 것 - 이 세상 모든 꼴찌들에게

기사승인 2021.09.21  16: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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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 『꼴찌 강아지』(프랭크 애시 | 김서정 역 | 그림책공작소 | 2015)


"LESS IS MORE"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1855년에 발표한 시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에 처음 등장했다. 적을수록 더 많다는 이 역설적인 문장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임과 동시에 모든 것에 적용하려 애쓰고 있는 문장이다. 탈무드의 한 구절인 “많은 단어로 적게 말하지 말고 적은 단어로 많은 것을 말하라”와 상통한다. 모든 것의 과잉인 작금의 현실을 관통하는 ‘간결하고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 짧은 문장을 생각하며 읽는 동화책 프랭크 애시의 <꼴찌 강아지>는 다른 어떤 책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책 속의 꼴찌 강아지는 늘 꼴찌다.
아홉 형제 중 태어난 것도, 엄마 젖을 빠는 것도, 눈 뜨는 것, 우유를 핥아먹는 법, 밤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 언제나 모든 것에서 가장 느리고 맨 마지막에 남는다. 가족의 선택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 『꼴찌 강아지』(프랭크 애시 | 김서정 역 | 그림책공작소 | 2015)

꼴찌 강아지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소위 '나머지 학급'이라 불리는 꼴찌반이 있었다. 각 반에서 학업 성취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만든 반인데, 정규 수업이 끝나고 추가로 남아 보충수업을 했다. 누가 어떻게 나머지 학급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나머지 학급 일원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부끄러워했다. 어느 심술궂은 아이들은 그 학급의 아이들을 '나머지들, 꼴찌들'이라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나머지는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이라 말하는 것의 주변에 존재함을 의미했다. 개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있었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꼴찌반이 되는 순간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는 것(혹은 살아내는 것)에 비하면 정말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언제나 꼴찌 강아지였어요."

살다 보면 이 꼴찌 강아지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꼴찌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심지어 꽤 열심히 사는데도 말이다. 어릴 때는 시험결과든 달리기경주든 심지어 급식을 먹는 속도까지 그게 뭐가 됐든 명확하게 누군가는 일등을, 또 누군가는 꼴찌가 될 수 있었다. “명확한 꼴찌”. 그때는 그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얼마나 상냥한 일인지, 마음 편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도 내게 꼴찌라 말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것(사람·상황 등)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 순위를 매기며 살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고 때론 비참한 일인지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겠지.

그다음 날에는 한 남자아이가 왔어요.
"여기야, 여기!” 나는 소리쳤어요.
"이 강아지는 너무 시끄러워."
아이는 다른 강아지를 데리고 갔어요.

이번에는 한 농부 가족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를 안아 올리는 거예요!
나는 너무 좋아서 아저씨 코를 앙, 물어 줬어요.
결국, 농부 가족은 다른 강아지 둘을 데려갔지요.

가족의 선택에서만큼은 꼴찌가 되고 싶지 않았던 이 꼴찌 강아지는 최선을 다한다. 짖기도 하고 무작정 달려들기도 하고 즐거운 마음에 코를 앙, 물기도 한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심지어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만드는 이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관계에 있어 일방적이었던 내 행동을 잔인할 만큼 마주 보게 한다. 잘해주고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사랑해서 했던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이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너무나 간단해서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단순하지만 아주 명확한 진리인 거다.

어느 날 드디어 내 차례가 왔어요.
커다란 손이 나를 들어 올려서는 한 작은 남자아이에게 데려다줬어요.
우리는 차에 올라탔어요.
남자아이는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어요.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마주 댔어요.
나는 아이의 코를 핥아 주었어요.
아이가 까르륵 웃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너 이거 아니? 넌 내 첫째 강아지야!"

 
 

경쟁이면 모를까 관계에 있어 첫째나 꼴찌 따위의 순서 매기기는 무의미하며 쓸데없다. <꼴찌 강아지>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위로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관계는 순서 없이 귀한 것임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내가 몇 번의 꼴찌를 했든 상관없다. 언젠가 나 역시도 첫째가 되는 순간이 올 테고 좀 더 나아가면 꼴찌든 첫째든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우리 인생에 찾아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지금 현재에도 ‘혼자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고통스러운 순위 매기기를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길 바란다. 책 속의 꼴찌 강아지가 한순간 누군가의 첫째 강아지가 된 것처럼 우리 사는 데 있어 첫째니 꼴찌니 따위의 순서 매기기는 정말로 무의미하며 정말로 쓸데없으니까 말이다.

 
 







[책 속의 길] 177
박미경 / 전국금속노동조합 대구지부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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