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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통념에 대한 치열한 팩트체크

기사승인 2021.10.20  14: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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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동 /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 조현욱 역 | 인플루엔셜 펴냄 | 2021)


주저 없이 고른 책은 <휴먼카인드>다. 얕은 독서지만 올들어 아니 적어도 최근 년을 통틀어 최고의 독서라 할 만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내 안의 고정관념은 폭격을 맞은 듯 흔들렸고, 돌 깨지는 탄식이 연신 이어졌다.
 
책은 치밀한 근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동원해 기존 사고의 전복을 유도한다. 그래서 어쨌냐고? 나는 위안을 얻었다. 나쁜 놈들이 끝도 없이 등장해 판치는 세상, 차별과 혐오, 탐욕과 불평등, 편견과 폭력,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냉소와 적개심이 온통 뒤덮고 있는 세상에서 그래, 적어도 그것이 인간 본연의 DNA 탓은 아니라는 반론에서. 사피엔스의 경쟁력은 협력과 친절함에 있었다는 치열한 입증에서. 그래서 책을 덮은 뒤 그 이전보다 조금은 음울한 색채를 덜어내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까.

저자는 인간 본성이 악하지 않음을 주장하기 위해 통념에 도발적 의문을 던지고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해 증거를 끌어 모은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믿게 된 것은 '확증 편향'과 '가용성 편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주 접한 정보가 사실이며 그것을 근거로 판단하는 경향이 발생하는 이유는 단연 미디어 때문인데,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악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상에는 더 좋은 일들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종방한 ‘갯마을 차차차’의 배경마을, 공진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따뜻한 일상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악한 본성은 국가 공동체를 통해 집단화, 조직화되고 교육을 통해 강요되고 주입되었다고 한다.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전제되어야 권력자와 기득권자가 저지르는 악한 행동에 책임회피와 면죄부 부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인간이 선하다고만 단정 짓지 않는다.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바라보면 더욱 선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각한다.

 
 
▲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 조현욱 역 | 인플루엔셜 펴냄 | 2021)

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폐허 속에서 약탈, 살인을 일삼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서로 의지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 일상을 이어갔다는 것, 군인들이 전쟁 중 무서워서 총을 못 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차마 총을 쏘지 못하더라는 것, 따라서 대부분의 살상은 원격으로 조종하는 요즘 말로 하면 비대면 공중 폭격과 포탄에 기인했다는 것,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다룬 고전 <파리대왕>과 비슷한 예를 찾아냈으나 서로 죽이기는 커녕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고 충돌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며 지내더라는 것.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수많은 스토리의 근간이 무너져 내리는 사례들이다.

침몰을 앞둔 타이타닉호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폐허 위에서, 9.11 테러현장 쌍둥이 빌딩 계단에서, 불이 붙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차량으로 모여들어 사람을 구해내는 시민들에게서 보여진 “먼저 가세요. 저는 괜찮아요”며, 침착한 용기와 자선도 마찬가지다. 멀리갈 것도 없다. 수백만이 운집한 촛불에서 화장실!을 외치면 대열이 홍해처럼 갈라졌다는, 그 미스테리한 질서를 지탱한 연대와 협력의 경험은 우리에게 차고 넘친다.     

저자는 자주 인용되는 심리학 실험이나 역사적 사건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유명한 '스텐퍼드 교도소 실험'이나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그리고 제노비스 사건(방관자 효과)을 통해 설명되는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추적한다. 허망하게도 그 같은 실험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이 저자가 탐구 끝에 내린 입증이다. 예컨대 다수의 목격자 모두가 방관한 것으로 알려진 제노비스 사건 역시 주변인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며, 길에서 쓸쓸히 죽은 게 아니라 이웃의 품에서 죽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물론 오보에 대한 후속 보도는 없었다.

'플라시보 효과' 반대에 '노시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정적 믿음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인데, 저자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믿음, 인간에 관한 비관론 역시 노시보라고 말한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서로가 악하다는 믿음 때문에 모두가 손해를 보는 재앙을 맞게 되는 일은 우리 주변에도 허다하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위안에도 불구하고 가시지 않는 질문들은 그대로 남는다. 전쟁과 탐욕, 차별과 혐오가 빚어내는 수많은 학살과 오늘도 이어지는 값싼 죽음들과 말의 흉기에 의해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현실에서 선,악의 판별이 다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자본주의는 능력 논리를 이용해 특권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하고 대중은 때로 속절없이 설득당하고 있지 않는가. 친절하고 공감력이 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뻔뻔한 자들이 살아남는 세상 아닌가.

그럼에도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라는 전제로 구축된 사회질서가 ‘당연하게’ 부여하는 폭력과 탐욕에 대한 면죄부에 의문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연대와 협력의 본성이 사회 시스템과 체제를 거쳐,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막아낼 유력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 환경을 형성하려는 노력과 투쟁이, 그 제도적 결과가 인간 본성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의해 은폐되고 사적 소유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 그렇지, 어쩌면 우리는 생산과 유통과 서비스에 기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일매일 소통하고 협력하는 중이다. 구조에 맞서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할 이유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책 속의 길] 181
이대동 / '대구민중과함께'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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