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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바른 무관심'으로 잘못된 삶을 톺아보다

기사승인 2021.10.27  1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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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락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지음 | 사계절 펴냄 | 2018)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사람과 그 부모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아이는 자신이 장애를 갖고 출생한 게 손해이고, 부모는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낳지 않았을 것이라며 낙태결정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 소송을 제기한 주된 이유였다. 대법원은 아이의 주장에 대해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가치의 무한함에 비추어 볼 때...장애를 갖고 출생한 것 자체를 인공임신중절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것 만으로는 낙태할 수 없어 부모의 낙태결정권은 침해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런 유형의 소송을 법률가들은 '잘못된 삶 소송'이라고 불렀다.
 
문명은 장애를 손해로 보지 않는다. 우리 대법원처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가치의 무한함 때문이든 아니면 그 무엇 때문이든 장애를 손해로 보는 건 어색하다. 그러나 엄청난 의료비 지출과 계속될 돌봄만으로도 장애는 법률적 손해 그 이상의 무게로 본인과 가족들을 짓누른다. 장애는 손해가 아니라는 말로 대충 넘길 문제가 아니다.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으로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고 한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연극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원영의 이력만으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논증하거나 '잘못된 삶'을 이겨내 쓴 책으로 보일 법하다. 그러나 이 책은 김원영이 여전히 '잘못된 삶'을 살아가기에 '잘못된 삶'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나아가 '잘못된 삶'은 없다는 유리된 관념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방안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김원영은 장애나 질병을 가졌거나 그 이외의 다른 '잘못된 삶'을 산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생생한 고유성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에서 "모두가 훨씬 깊은 존중을 받으며 매력적인 관계로 진입"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김원영은 '잘못된 삶'을 개인의 윤리적 결단, 인간관계, 법과 제도의 각 측면에서 들여다보면서 '변론'한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지음 | 사계절 펴냄 | 2018)
레즈비언 청각장애인 커플이 자신들처럼 듣지 못하는 아이를 낳기 위해 청각장애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았다. 이들의 선택을 주변에서 만류했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청각장애가 아이에게 물려주기에 ‘좋은’ 특성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김원영은 청각장애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보다 "복잡한 공간 패턴을 훨씬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특수한 인지구조를 갖고 있어...같은 공간에서도 더 넓고 깊은 세계"를 살아 간다. 김원영은 수어와 시각에 의지하는 삶의 존재 방식이 언제나 ‘잘못된 삶’은 아니므로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선택한 커플이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반문한다.

젠체하는 법률가는 장애를 가졌든 안 가졌든 '모두가 어디서든 편안하게 오줌 눌' 권리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할 권리를 사회권의 일종으로 보고 공중화장실을 촘촘히 짓고 지하철과 버스 노선만 잘 갖춰 놓는 것만으로도 국가와 사회가 얼추 할 일을 다했기에 부족한 감이 있더라도 문제없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가장 숙달된 최고법원의 재판관들에겐 더 익숙하다. 그들에겐 장애인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못하거나 혼자서는 오줌을 누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도 그것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적절한 고려를 요청하는 문제였고 다양한 국가 과제에 대하여 최우선적인 배려를 요청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김원영은 장애인의 오줌권과 이동권을 자유권으로 이해하길 권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장애인의 오줌권과 이동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디보티(devotee)'라고 하고 이들이 장애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욕망을 '디보티즘(devoteeism)'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디보티즘을 병리적 수준의 페티시즘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김원영은 디보티즘을 질환으로 분류하기보다 "인간의 몸에서 아주 다양한 맥락과 의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하므로 디보티는 장애를 가진 사람의 신체를 통해 그 사람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읽어내고 그 사람의 고유한 개별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원영의 변론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변론은 판단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 우리 사회가 너그럽게 수용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잘못된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것이기에 김원영의 변론은 깊은 울림을 준다. 김원영의 변론이 한낱 일방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가치의 지위를 획득해 사람들이 ‘예의바른 무관심’으로 장애나 그 밖의 '잘못된 삶'들을 바라보는 세상으로 바뀌길 희망한다.
 
 
 
 
 
 
 
 
 
 
[책 속의 길] 182
김무락 / 변호사. 법무법인 맑은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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