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뒤면 노태우 국가장 영결식이 치러진다니 잠이 안온다. 공과? 예우라고? 도무지 이런 날을 맞을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참담한 퇴행이다. 몽둥이를 들지 않았을 뿐 또 다른 이름의 국가폭력이다. 이 정부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까맣게 잊은 듯 결정적인 순간, 그렇게 해맑고 한없이 온화하고 너그러워지는지 질릴 지경이다. 이 기가 막힌 화합을 두고 입에 밥을 밀어넣고 있는 나는, 일일 드라마 같은 대선 소식을 살뜰히 챙기고 있는 우리는 무슨 죈가. 자괴감은 왜 또 우리의 몫인가
나의 20대는 노태우로 시작이었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열사 영정의 사진으로 남은, 그 날들의 친구들은 노태우에 대한 분개로 생의 마지막 감정의 조각들을 채웠을 것이다. 그들이 못다한 삶을 부채 삼아, 때로 밑천 삼아 30년 현대사를 채워온, 최소한의 합의 수준이 도무지 이 정도였나 통탄할 노릇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댄 학살자에 대해, 숱한 민중들의 삶을 어지럽히고 왜곡을 강요한 자의 죽음에 머리를 숙이라는데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역사적 단죄에도 알라바이를 제공한 선례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며칠 전 10대에 저지른 나치수용소 부역을 이유로 96세 할머니를 법정에 기어이 세우는 독일을 언제까지 마냥 부러워해야하는 대한민국이다. 이런 번지르르한 선진국에서 나는 이제 무슨 낯으로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나.
대구 집권당 인사들의 조문 소식을 보고 토할 뻔했다. 상대 당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게거품을 물고 당장 촛불을 들자고 덤벼들었을 그들 아닌가. 열사 이름을 팔고 민주화 투쟁을 닳도록 치장해 얻은 알량한 자리로 기껏 구현하고자 하는 현실 정치라는 이름의 실체가 고작 이것이었나. 뻔뻔하고 태연한 자기부정으로 무슨 고고한 역사의 탑을 쌓아 올리려고 저런단 말인가?
[기고]
이대동 / '대구민중과함께'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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