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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폭력, 저항은 언제나 진부하지 않다

기사승인 2021.11.10  14: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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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 『폭력의 진부함 - 얼굴, 이름, 목소리가 있는 개인을 위하여』
(이라영 지음 | 갈무리 펴냄 | 2020)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직원들과 다르게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라 일이 많진 않았다. 그만큼 부담도 적었고 업무는 단순했다. 그래서 그 공간에 있을 땐 누구보다 표정이 밝았고 여유가 있었다. 그 회사는 다른 회사와 달리 보고업무가 많았다. 나중에는 보고업무를 위한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직원들의 피로감은 컸다. 카톡을 바로 답장 하지 않으면 지적이 들어오고 상사가 출입문만 지나면 모두가 기립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왜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상사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다 활용해 직원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누군가 보면 기분 나쁘지만 “너가 참아”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모든 것들을 활용했다.  업무에서 상사의 지적은 직원들의 일상을 침범하기도 했다. 상사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린다. 모든 직원들이 먹을 수 있게. 휴게실에는 커피와 차를 선택할 수 있게 배치가 되어 있다. 하지만 모두들 상사가 내려준 커피만 마셨다. 커피는 ‘열심히 공들여서 내려준 상사의 커피’라는 노고가 들어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아서 적당히 눈치를 봤다. 아무도 그것을 ‘먹어라‘라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했다.

 정당한(?) 업무 지시아래 이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직원들의 감정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발견한 것이 있다. 직원들은 상사의 기분을 살피고 감정을 돌보지만 상사는 직원들의 감정을 돌보지도 신경쓰지도 않았다.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나의 평범한 폭력의 역사는 오직 나의 기억 속에만 고여 있다. 아무도 모른다. 나는 복기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시시하고 평범하며 특별한 사건이 없어서 실망스럽게 보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처럼 보일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은 개인의 역사를 복기해 본다.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만을 폭력의 증거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지극히 평범한 폭력의 얼굴에 대해 말하고 싶다. 문화가 되어 버린 폭력들. 단지 말 한마디일 뿐이지만 나를 지배하는 행위들. 좋은 사람들의 좋은 말은 어떻게 차별에 거름을 주는가. 이 사소하고 평범한 폭력들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있다. <폭력의 진부함 p.19>
 
 
 
▲ 『폭력의 진부함 - 얼굴, 이름, 목소리가 있는 개인을 위하여』(이라영 지음 | 갈무리 펴냄 | 2020)

 아는 선배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늘 하던대로 평소 있었던 근황을 나눴다. 선배는 최근 본인의 남성 제자가 결혼식을 한다고 인사차 왔었던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아끼는 제자의 성실한 모습을 결혼할 애인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제자의 칭찬을 구구절절 얘기했다고 했다. "이 친구 사실은 어떤 봉사를 많이하고... 의리도 좋고..." 진심이었지만 으레하는 칭찬처럼 들렸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측 또한 장난 섞인 태도로 "너가?~"라고 웃으며 말했다고 했다.

그렇게 차 안에서 그 이야기는 끝났고 선배가 말을 이었다. "여자가 좀 쎄 보이더라". 상대방을 알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냥 대답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왜 쉽게 '쎄다'라는 표현을 했을까. '쎄다'라고 하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웃어 넘겼다.

 보는 대상에 머무는 이들은 감히 보는 주체가 될 수는 없지만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도록 권유받는다. 그렇게 ‘내부의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검열한다. 여성의 시선과 시각이 하찮게 여겨지기에 여성이 목격한 것도 사사롭게 취급받는다. 영화는 ‘남성적 응시’ 속에서 여성을 묘사하고, 이렇게 시선의 권력 속에서 묘사된 여성의 모습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고, 이는 실체와 무관한 실재가 된다. 여성을 응시할 수 있는 권력은 곧 여성을 재현할 수 있는 권력이며 여성을 정의내릴 수 있는 권력이다. <폭력의 진부함 p.131>

 군생활을 남들보다 조금 길게 했다. 병사로 입대하고 나서 부사관을 지원해 군생활이 길어졌다. 그래서 군대 관련 콘텐츠만 나오면 언제나 관심이 간다. 군대 내 부조리를 다룬 'D.P'나 특수부대의 훈련을 모방한 '가짜사나이'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꽤나 재미가 있었다. 모든 군대가 부조리한 것만은 아닐테고 모든 군대가 극한의 상황만으로 보내진 않는다.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공통점은 있다. 아무도 거절을 하지 않는다. 혹 누군가 거절을 한다면 그건 폭력의 이유가 된다.

 군생활을 하며 공연을 위해 태권도 동작을 연습했던 적이 있다. 나는 1년 넘게 차이 나는 후배와 한 조가 되어 동작을 연습했다. 선배가 아니라 후배랑 하는 연습이라 그 시간이 너무 편안했다. 동작이 많다 보니 한동작 한동작 끊어서 연습을 했다. 그러다 후배는 내가 틀렸는지 자연스럽게 내 손목을 잡고 동작을 교정해주었다. 말도 없이 내 손목을 잡고 교정해주었다. 빠르게 동작을 따라가야 하니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왜 기분이 나빴을까.

 경험한 자의 목소리를 빼앗아 할 말을 정해 주는 태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경험한 자의 구체적인 언어는 해석 하는 자의 언어에 의해 많은 사실들을 탈락당한다. 실질적인 공포와 생생한 감정은 해석하는 자의 불쾌감 앞에서 좌절한다. 서 있는 자리에서 눈을 잠시 돌려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태도, 역지사지가 안 되는 ‘해석자들’이 불쾌감으로 해석을 지배한다. <폭력의 진부함 193.p>

 나 또한 이 사회의 구성원인데 나는 늘 옳은 판단을 하고, 부당함 앞에서 용기 있게 싸웠던 사람일 리는 없다. 자주 주저하고, 적당히 넘어가고, 때로 타협하고, 인정 욕구 앞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다소 부끄럽더라도 왜곡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얼굴과 부당하게 노출되는 얼굴, 사라지는 이름과 부당하게 공개되는 이름, 그리고 묵살당하는 목소리가 있다. 폭력은 진부하게 반복되는데, 이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진부하지 않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공적 발화를 하기 위해 애쓰는 많은 사람들을 지지하며, 나의 크지 않은 목소리 하나를 얹는다. <폭력의 진부함- 서문>


 
 
 
 






[책 속의 길] 184
김정훈 /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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